박진선 <고창소방서장>
선운산 자락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고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맴돌고 새소리도 깊어져 가는 가을산이 등산화에 거울처럼 비친다. 오랜 시간 신발장을 지키던 등산화의 먼지를 털고 산에 몸을 맡기는 일은 호주머니에 동전 하나 없어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 산은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색채의 옷을 갈아입으며 등산객을 유혹한다. 봄에 생동감, 여름에 푸르름, 가을에는 숙연함, 겨울에는 순결함을 잊지 않고 마음을 열어 그들을 맞이한다. 이처럼 산은 아낌없이 그 모습을 바꾸며 등산객에게 행복을 제공한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등산객은 산악사고를 당하여 아픔의 산이 된다. 특히 산악자전거 사고는 생명을 앗아가 유가족에게 슬픔을 심는 악산(惡山)이 되어버린다. 최근 방장산에서 50대 남성이 산악자전거 취미활동 중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9구급대원의 노력으로 자발순환회복(ROSC)되었지만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다.
산악자전거 사고는 산행 중 사고보다 그 위험성이 크다. 산악자전거 운전자도 그렇지만 산행 중인 등산객에게도 위험을 가하게 된다. 그래서 등산객과 마찰을 일으켜 언성이 높아지는 등 즐거워야 할 산행이 언짢아진다. 차라리 자전거 전용로를 만들어달라는 이야기까지 솔솔 나오는 지경이다.
산악자전거의 즐거움은 산 정상에서의 성취감도 있겠지만 내리막길에서 내려오며 느끼는 스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내리막길에서 자전거의 속도는 상상하는 것보다 빠르다. 이 속도로 인해 등산객과 부딪친다거나 돌부리에 넘어지는 사고는 심한 경우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또한 경량화된 헬멧이 머리를 어느 정도 보호해줄 수도 있으나 안면부나 경추부위를 보호해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여도 안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사고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하고 제아무리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부상을 막을 수는 없다.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성능이 뛰어난 자전거를 소유한다면 우쭐함에 사고 위험은 더 커질 것이다.
두 번째는 액티브한 레져를 즐기기 위해 등산로를 벗어나 험한 길을 달리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지면의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워 숨어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위치파악이 정확하지 않아 시간이 지체된다면 저체온, 과다출혈 등 2차 사고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등산로에는 위치표지판이 있어 대략적인 위치 파악이 용이하나 등산로를 벗어난 곳에서는 구호의 손길을 뻗어도 잡아주는 이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전거 사고가 산길에서만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길이 좋은 평지에서도 발생한다. 그러나 위험성의 경중을 비교한다면 산에서 사고발생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악자전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기 전에 충분한 준비운동과 헬멧, 무릎보호대 등 안전장구 착용, 출발 전 산길을 잘 파악하고, 험하고 가파른 내리막길은 잠시 멈춰 자연을 즐기는 여유를 갖고 걸어 내려오는 것도 방법이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즐기는 것도 행복이지만 산은 천천히 즐기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가을산의 아름다움이 자전거의 체인에 휘감기며 더 안전한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를 일이다. 등산객이든 산악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도 전부 산을 좋아하는 마음은 똑같다.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넉넉함으로 반겨줄 것이다.
산은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지만 결코 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낙엽이 경고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안전의 체인이 풀린 산악자전거를 생명과 바꿔 고삐 풀리게 달릴 것인가? 아니면 다 함께 즐기는 청정하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를 귓가에 담고 아름다움을 즐길 것인가? 작은 주의에 방심한다면 언제든지 낙엽은 그 빛깔이 탈색될 때까지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