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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2)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여럿이 함께’여서 견디기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보내야 할 때도 있다. ‘여럿이 함께’가 무조건 긍정적이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혼자’ 있는 시간과 고민의 저축이 어쩌면 ‘여럿이 함께’를 만들어가는 자양분일지도 모른다.
 




‘여럿이 함께’여서 가장 힘이 드는 곳은 개인적 생각으로는 직장인 것 같다. 많지 않은 세월(어린 시절, 초·중·고 시절, 대학 시절, 군대 시절, 대학원 시절 그리고 조교와 시간강사 시절)이 켜켜이 쌓여가는 이 시점에서 ‘직장생활’이 ‘여럿이 함께’ 단합되기 어려운 집단이다. 




 
어린 시절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순수하게, 초·중·고 시절도 ‘사춘기’라는 변수가 있지만, 나름 ‘정’이 넘치고 ‘사랑’이 가득한 현실이었다. ‘반사회’라고 하는 대학과 대학원 시절, 사회생활로 뛰어들었던 조교와 시간강사 시절도 지금의 직장보다는 ‘의견’을 조율하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의 시작인 직장은, 서로에게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이 될 수 있는’ 삶의 ‘치열한 현장’이다. 그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승진하고 탄탄대로 인생의 종점에 발을 내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럿이 함께’하는 직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직장과 사회는 원만한 대화와 협조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에 의한 ‘갑질’이나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여럿이 함께’가는 문화에 벽을 들이대고 있다고 판단된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간의 갈등 초래는 이미 출발선에서 준비된다.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지를 고민하는 ‘여럿이 함께’가 요구된다.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막상 어느 한 쪽이 갈등을 해소하고자 해도, 상대편과의 대화가 어려운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해결될 갈등이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고 해결된 갈등은 서로에게 상처만이 남아 치유에도 필요 이상의 경제적인 소모가 요구된다. 이러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한 현대인이 많다. 보이지 않는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피해만이 전부가 아니다. 현대인의 ‘여럿이 함께’ 가 가장 어려운 것은 ‘정신의 문제’다.
 




‘여럿이 함께’ 하나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갈등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갈등이 깊지 않다면 적절하게 ‘밀고 당기면서’ 여럿이 함께 가는 직장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지나온 시간이 그랬고, 다가올 미래가 그럴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서로를 배려하면서,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삶을 전개한다면 ‘조화’라는 단어가 ‘여럿이 함께’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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