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적인 삶속에서 출근을 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책상에 앉으니, 달력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저런 일정이 적혀 있다. 많은 행사로 유난한 2학기라지만, 벌써 11월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줄은 알았다. 그렇지만, 달랑 두 장 남은 달력이 측은해 보인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눈앞을 지나가는 ‘가는 세월’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냥,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는 것이 정답이다. 무엇을 특별하게 계획하거나 실천에 옮길 수도 없는 현실이다. 직장이라는 먹고 사는 문제가 현실이다. 그 현실을 벗어나 ‘가는 세월’을 잡으려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 시대를 대중들과 함께한 ‘가는 세월’이란 노래가 있다. 이 ‘가는 세월’은 서유석의 여덟 번째 앨범이다. 서유석은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던 그가 활동금지 조치 후 3년 만에 복귀해 발표한 앨범(가는 세월/아름다운 사람)은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히트작이다. 타이틀곡 ‘가는 세월’은 그해 가장 인기 있는 곡이었다. 지금도 많은 민초들이 흥얼거리는 대중가요의 하나다.
가는 세월
작사- 작곡- 노래 서유석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중략)/달이가고 해가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이내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이내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이 노래의 시작은 넋두리에 가까운 ‘가는 세월을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로 시작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 ‘세월’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시간과 시간의 만남이 ‘세월’을 만든다. 그런데 그 ‘세월’은 너무도 빨라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멍하니 창밖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짧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젊은 시절, 그토록 고민하고 고민했던 ‘인생’이라는 것이 ‘이것’이었다는 생각에 멈춘다. 수많은 인생의 선배들도 이런 생각으로 ‘가는 세월’을 속절없이 맞이하고 떠나보내지 않았을까? 라는 결론에 이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받아들이는 거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는 만족감에 나름 흐뭇하다.
‘가는 세월’에 대한 수많은 고민은 과거, 현재, 미래 진행형이다. 조금은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얼추 비슷한 고민과 결론을 도출하지 않을까 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밥을 남들도 다 먹을 것이고, 슬픔과 기쁨도 유사할 것이다. ‘하루 삼시 세끼 챙겨 먹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가는 세월’은 ‘삼시 세끼’의 축적물인지도 모르겠다.
‘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노력하지 말자. ‘가는 녀석’은 그냥 가도록 놓아두자.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보낼 생각으로 우리의 뇌를 도배해보자. 아깝고 아까운 시간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순간순간을 아름답고 후회하지 않는 것으로 채워보자. 돌아서면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사춘기가 아닌 서로서로를 챙기는 제2의 청춘으로 천국 가는 그날을 만들어 가자.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