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오늘도 비교적 이른 시간에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걷다 보면, 이런 저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실개천에는 원앙식구들이 물질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두툼한 점퍼에 모자, 마스크, 장갑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빠르게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 애완견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사람, 세월이야 가든 말든 음악에 심취해 어그적 어그적 걷는 사람 등 다양한 아침 풍경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내일도 같은 일상의 반복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 눈에 담아둔 풍경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만났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출근을 하고, 책상에 낮아 컴퓨터를 켜고, 커피포트 스위치를 누르고, 하루의 일정을 점검하며,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들고 교실로 향한다. 허겁지겁 가방을 끌다시피 교실로 들러오는 녀석들, 이른 시간에 등교하여 엎드려 자고 있는 귀염둥이들,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하루를 시작한다. 아직 아침 조회 종이 울리지 않았다고 우기며, 화장실을 다녀오는 부지런함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런 녀석들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고 행복하다. 이 행복함으로 녀석은 언제, 어디서나, 자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말도 많고 불만도 많은 한 녀석이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툴툴거리고, 매사에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언어표현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장점을 찾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섣부른 판단은 ‘실망’이라는 씁쓸함을 남길 것이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러한 기대는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녀석의 장점을 선물로 받았다. 우연하게 심사하게 된 교내 ‘과학의 날 행사’ 백일장 글짓기 대회가 그 주인공이다. 쉽지 않은 과학 관련 주제였음에도 시원스런 문장과 명쾌한 결론, 적절한 단어 사용, 구성의 간결성 등 다른 학생들과 비교되는 그의 문장에 ‘대상’으로 선정했다.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던 녀석의 행동과는 정반대의 글들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은 누구의 것일까?
수업 시간, 녀석의 글쓰기 능력에 대하여 폭풍 칭찬을 공개적으로 아끼지 않았다.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서 글 쓰는 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선생님의 생각도 전하면서, 녀석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의사’가 꿈이란다.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 없었다. ‘의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내서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했다. 그리고 이어진 녀석의 수상(춘향제 백일장, 만인의사 백일장, 혼불작은도서관 백일장 등)은 아까운 글 솜씨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됐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주제가 제시되어도 자신 있게 글을 쓰는 녀석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만날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도 많은 깨달음이 있다.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아픔이 있고, 목표가 있어 발생하는 갈등이다. 이 갈등의 해결이 언제, 어디서나, 다 붕어빵처럼 같을 수는 없다.
이것이 다양성이다. 이 다양성을 인정하면 머리가, 마음이 편해진다. 괜한 걱정과 앞서가는 설레발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눈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담아둘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지 말자. 언제, 어디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