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여 범 (yeobeom@daum.net)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삶의 활력을 잃은, 어른에게 ‘더’라는 말 보다는 정말 필요한 것이 ‘덜’이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원치 않는 시간의 흐름 속에 ‘어른 개미’가 되어 있다. 열심히 일했지만 집도 하나 장만할 수 없고, 간신히 먹고사는 ‘어른 개미’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의 결과물이다.
‘어른들은 노는 걸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악시하는 것 같다. 그들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린 나를 협박했다. 봤지? 노는 건 이렇게 나쁜 거야. 나는 겁을 먹었다.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노는 대가가 베짱이처럼 빌어먹고 사는 거라니, 어느 새 노는 것은 무의식에 죄악으로 자리 잡았다.’(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웅진지식하우스, 2018, 83쪽.)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빌어먹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어른 개미’는 안주하며, ‘더’를 외치며 노는 걸 싫어하는 ‘어르신 개미’를 향해 달려간다.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인 ‘슬픈 개미’의 인생이라는 현실을 피하기는 어렵다.
‘포기는 비굴한 실패라고 배웠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현명한 삶을 살기 위해선 포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내‘나 ’노력‘ 같은 기술을 이미 수도 없이 익히며 살았지만, 포기하는 기술을 배우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포기하지 말라고 배웠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해 더 큰 걸 잃기도 한다.’(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웅진지식하우스, 2018, 55쪽.)
위 예문에서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를 향하여 ‘자,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용기 내어 포기합시다. 알겠습니까?’처럼 현명한 삶의 기본이 ‘포기하는 기술’로 포기하지 못해 더 큰 것을 잃는 ‘무모함’을 경계하고 있다.
누구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많은 시간과 경제적 투자를 통해 많은 시간 노력한 결과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그 실패의 결실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자! 그리고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열정을 다해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왜냐하면 ‘현명한 포기’는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버티다 하는 ‘체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