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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怒)하기를 더디하라





박   여   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 한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했다. 무엇이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진 자’의 재산을 나날이 늘어간다. 반면, ‘못 가진 자’들은 치열하게 시간 시간을 살아내도 ‘죽어라죽어라’ 삶이 힘들기만 하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보여주는 원초적인 병폐의 하나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원만한 인생을 누려야 함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설정되어 있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이미 초등학교 과정에서 어느 정도 정립되어 올라오는 그들의 가치관을 교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의 직업이나 신분에 따라 이미 선이 그어져 있는 아이들을 바라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사소한 볼펜 한 자루도 메이커 사용 여부에 따라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된다. 애써 모른척하고 그 친구와 잘 지내보려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결국 상처로 ‘성장’이라는 나이를 먹게 된다.


 
시험을 마치고 성적확인 기간에도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날 수 있다. 차분하게 자신의 성적과 답안지를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선생님께 ‘이의제기’가 아닌 ‘항의하는 친구’가 있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학원이나 과외 선생의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이해가 어려운 상황이 종종 있다. 그저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대화의 시작과 끝이 없는 어린 중학생에게 화로 맞대응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럴 때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언 19:11), ‘온화한 대답은 격노를 돌이켜 놓지만, 고통을 주는 말은 분노를 치밀게 한다’(잠언 15:1),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


 
이런 친구들의 대부분은 청소시간, 청소에는 관심이 없이 자신의 책상에 앉아 학원 숙제에 열중인 경우가 있다. 자신의 청소구역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1년이 다 지나가는 이 시점까지 그 녀석들이 청소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매사에, 모든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녀석은 정말 중요한 자신의 일을 놓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녀석도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그럼에도 녀석은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반면, 부족한듯하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녀석들이 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배려’와 ‘사랑’의 이끔이들이 있다. 녀석들은 공부를 썩 잘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인성 하나는 ‘짱’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리를 정리하고, 칠판을 지우고, 식사시간에도 먼저 양보하고, 여유롭게 사는 녀석들이 나는 참 좋다.


 
학교는 지식만을 배우는 장소가 아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굳이 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검정고시’를 통해 상위학교에 진급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기초적인 질서’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삶’을 배우기 위함이다. 그 현장에서 자기 것만을 고집하는 녀석들이 생각을 바꿔, 조금은 손해를 보고 더디게 가더라도 함께 달려가야 할 것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많은 ‘양보’가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기에 욕심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내려놓으려 하면 할수록 더 집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믿음’과 ‘기도’가 필요한 시기이다. 눈을 돌리면 다 잊어버리고 황당한 행동을 보여주는 사춘기 절정의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은 ‘기다림’과 ‘시간’이다. 그 ‘기다림’과 ‘시간’ 속에 배려로 함께 하는 학교, 늘 ‘손해’보는 녀석들이 활짝 웃으며 서로 챙겨주는 웃음바다이길 기대한다.
노(怒)하기를 더디하라. 그러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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