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 그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기 마련이다. 나 역시, 건강하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헬스장을 가서 가벼운 운동에도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프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생각해보면, 뭐 그리 서운해 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주변을 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걷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앞을 보지 못하거나, 신체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나름의 아픔이 존재한다. 이런 현실에서 단지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다. 수많은 교통사고와 재해에 따른 질병 등으로 인한 신체장애가 많은 현대인들의 삶이다. ‘나 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만한 현실이다. 그러나 질병이나 원치 않는 사고는 준비된 것이 아니다. 항상 조심해야 하고, 예방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삶이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나는 어떻게 지금 ‘서 있으’며, 직장에서는 어떤 위치로 ‘서 있는’ 지,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에 휩쓸려, 친구에게 속아 삶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서’ 있는 장소가 중요하고, 지위나 신분이 중요하다. 설령, 말단 직원이라 해도 자신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구나 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성취에 대한 만족도’도 당연히 다를 것이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어리석은 걸음’은 반갑지 않다.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계획’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현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서 있다.’ 당당하고 건강하게 서 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당당하게 서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을 판단하기 전에, 그들의 삶을 바로잡아 주기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지혜의 성경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태복음7:3~4)"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어떤 ‘좋은 말’도 강요가 되면 곤란하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성숙하고 건강한 하나의 존재로 당당하게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당당함 뒤에 숨겨진 삶의 애환에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어떤 두려움도 나는 정면 돌파할 것이다. 잠시의 비굴함으로 살아가는 남은 인생이 아닌, 진정한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노화에 의한 신체의 어려움은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올곧은 정신마저 흔들리면 어려워진다.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아름답게 짜증내지 말고 살아가자. 주어진 시간들이 얼마나 덧없고 짧은 놀이터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 그리 아웅다웅 할 필요도, 얼굴을 붉힐 필요도, 미워할 필요도 없다. 다 내려놓자.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