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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



박  여 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그저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춥게 만드는 것일까? 겨울을 유난히 싫어하면서, 추위에 유독 약해지는 사람이 있다. 대체적으로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어들면서 열량의 부족으로 추위에 민감하다. 

그래서 인생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이면, 가벼운 산책이라도 움직임에 충실해야 한다. 그 어느 누가 ‘추위’를 좋아하겠는가?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마다 추위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한다.
 
그날도 연병장의 푸르른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다. ‘추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그것은 아마도 훈련소 시절이었던 것 같다. 가장 춥다던 1월의 중간쯤 증평훈련소에 입소했다. 이런저런 인적사항을 조사하고 나서 연병장에 모였다. 

조교들이 등장하고, 뜬금없이 그 추운 겨울날에 웃통을 벗겨 연병장을 돌게 하였다. 이것이 지금도 기억하는 추위와의 전쟁이자 군생활의 출발점이었다. 그날 이후, 목감기가 심해지고, 의무대에서 주시를 맞아도 효과가 없는 기나긴 감기의 고통을 안고 군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또한, 자취방 창문 너머로 항상 반겨주던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그루의 푸르른 나무가 있었다. 연탄으로 난방을 하던 대학교 시절의 자취방은 추위를 몸으로 기억하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추억의 그림자이다. 

1개월을 살아낼 수 있는 연탄이 창고에 그득 쌓이면 입가에 미소가 머물던 시절이다. 돈이 없는 가난한 친구들은 연탄을 구하지 못해, 자취방을 물을 뺀 뒤, 다른 친구의 거처로 몸만 움직여 기생하는 겨울을 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한겨울 보다 추운 시기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이 시작되는 추억의 흐름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대학이나 군 시절에는 따뜻한 정이 넘쳐흘렀던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추위는 그때는 추위가 아니다. 너무나 발전한 현실에서 다가오는 추위는 추위가 아니다.
 
그저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가 그립고 그립다. 그 시절의 따스한 정이 그립다. 인간에 의한 저돌적으로 밀려오는 그 추위와는 사뭇 다른 정을 느끼고 싶다. 정의 배고픔에 비하면, 바람이 불고 찬 공기가 코끝을 스쳐도 나름 견딜만하다. 

그러나 인간이 가져오는 정을 날려버리는 거친 바람과 추위는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를 더욱 그리워지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문을 닫게 된다.
 
그저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춥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스스로의 카테고리에서 배려와 여유 없이 자신의 삶만을 향해 달려가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어야만 마음을 여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그러다보니, 선행을 베푸는 일부 착하디착한 민초들이 오해의 중앙에 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이토록 춥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저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어떤 추위나 냉소에도 굴하지 않고, 숲을 이루기 위해 소리 없이 성장하는 푸르른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말로는 정말 쉽다. 실천이 문제다. 마음은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기다가도 사회적인 지위나 주변의 시선 때문에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아 보인다. 내 자신도 그 부류에 발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으로 부끄럽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해, 부끄럽지 않고 춥지 않은 시간들을 만나고 싶다. 나 자신부터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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