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 -파블로 피카소
파리시립미술관 소장 걸작선을 선보이는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 3월 31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의 테마인 작은 입방체들에서 유래한 큐비즘(입체주의)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 미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입체파 화가들은 화면다중분할과 조합이라는 획기적 표현기법을 통해 사실 모사에 치중했던 전통회화의 틀을 과감히 파괴함으로써 20세기 창작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입체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세잔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입체주의의 상징은 피카소지만 그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폴 세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번 전시 역시 폴 세잔이 1882~1883년에 그린 ‘햇살을 마주 본 레스타크의 아침’ 등 두 편의 풍경화로 시작한다.
입방형 지붕 같은 기하학적 풍경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서양화의 전통적 원근법을 무시하고 해체하듯 그려 후대 화가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의 사후 1년 후인 1907년에 열린 살롱 도톤느의 ‘세잔 회고전’은 입체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 전시를 통해 피카소와 브라크, 라울디피와 같은 화가들은 서양화의 전통적 원근법을 무시하고 해체하듯 그린 세잔의 화풍을 보고 새로운 미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전환점이 된다. 피카소는 “세잔은 우리 화가들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정도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양미술사의 주요 사조인 입체주의와 화가들을 소개한 이번 전시는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이 소장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를 필두로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 조르주 발미에, 오귀스트 에르벵 등 20여 작가의 진품 명작 90여 점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단독 기획전으로 입체주의 회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은 파리퐁피두센터 국립근대미술관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20세기 미술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20세기 미술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06년 시작된 입체파 시대 110주년을 기념해 3년 전 기획 됐다고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전시다.
마지막 섹션에는 1938년 튈르리 살롱전에 출품된 로베르와 소니아 들로네 부부의 6미터가 넘는 초대형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 작품들은 파리 시립미술관이 서울에서의 특별전을 위해 80년 만에 처음으로 관외 반출했다.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하고 율동적인 색채구성으로 입체파 회화의 절정기를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촬영이 가능해 관람객들이 쉬어가며 대형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는 등 편한 분위기를 연출됐다.
이번 전시의 테마가 피카소와 큐비즘인 만큼 ‘피카소의 작품을 다수 볼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피카소보다는 다른 입체파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여서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입체주의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미술사 교육에 초점을 둔 점이 두드러졌고, 이 전시를 통해 입체주의라 하면 피카소만 있는 줄 아는 대중들에게 그 시대의 한 사조로 많은 작가들이 함께 입체주의 작가로 활동했다는 점을 알리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전시였다.
입체파는 서양미술사에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 등 20세기 전반의 미술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요즘 미디어아트, 디지털 융복합미술전시에 주로 관람객들이 폭주하는데 이렇게 진품명화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