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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주저하지 말자



박 여 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질문’을 주저하지 말자. ‘질문’이 없는 대화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갑’과 ‘을’의 대화에서 어떤 이유나 상황이라도 대화가 어긋날 수 있다. 이때, 그것은 ‘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조심스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궁금해도, 이치에 어긋나 너무나 부당해도, 묻지 않는 것이 ‘갑’과 ‘을’의 대화에서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갑’의 입장에서 보면,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을’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입을 틀어막고 궁금한 것이나 부당한 처우에 복종하며, 뒷담화로 마무리하는 것은 너무도 일방적이고 공평하지 못하다.
 
‘질문’을 주저하지 말자. 부모와 자식의 대화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이라는 무게를 앞세워 아내나 아이들을 힘으로 어찌 해 보려는 가부장적 인식은, 그들의 미래에 흑역사를 남길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질문’의 시작은 가정이어야 하는 이유다.

‘왜, 그래야만 하죠?’ 라는 질문에 친숙한 아이를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행복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질문’보다는 ‘PC’나 ‘스마트폰’을 통한 ‘게임’이 먼저인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존재함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의 기본적인 사고는 ‘부모’는 경제를 책임지고, 자식을 책임져야하는 ‘의존적인 사고’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마냥 쳐다만 볼 수 없는 현실이다.
 
‘질문’을 주저하지 말자. ‘수업’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일방적인 ‘진도빼기(?)’는 학습효과가 떨어진다. 물론, 단기적인 성적 향상이나 암기식 학습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학창시절을 돌아다보면, 학생의 입장에서 교사에게 자주 질문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친구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자존심 문제도 있다. 정말 모르는 것이 있어 ‘왜, 그래야만 하는가요?, 이해가 되지 않아요?’ 라고 질문 하면, 여기저기서 따가운 눈초리가 와 닿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몰라서, 궁금해서 질문을 했는데, 부메랑이 돼 나의 자존심에 상처가 돼 되돌아오곤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수업에서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생이 질문하기 어려운 부분을 교사가 먼저 학생에게 질문을 유도해, 수업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일 것이다. 힘들고 지겨운 수업보다는, 기다려지고 질문을 위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질문이 있는 수업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질문’을 주저하지 말자.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해석으로 오해와 갈등에도 그 출발점은 ‘질문’일 경우가 많다. 정말 사소한 것이지만, 한 번만 질문하고 그의 의중을 살핀 뒤, 행동으로 옮겼다면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크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생각’이 ‘그의 생각’일 것이라는 확신으로 ‘깜짝 쑈’를 준비한다. 나름 신경을 쓰고, 많은 돈을 들여 준비한 ‘빅 이벤트’가 너무나 허무하게 초라해지는 일을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써프라이즈’를 좋아하는 현대인의 양면성을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민낯이다.
 
‘질문’을 주저하지 말자. ‘왜, 그래야만 하는가?’ ‘질문’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출발점이다. 주저하지 말고, 예의나 상황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적극적인 ‘질문’의 선두에 서 보자. 나의 ‘질문’을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 지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자. 매사에 신중하게 ‘질문’하고 ‘너’와 ‘나’의 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질문’이다. ‘질문’을 주저하지 말자. ‘질문’은 많아도 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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