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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한 그릇이 최고다!



박  여  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그나마 포근하던 날씨가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이 시리고 차가운 바람에 얼굴이 아려오는 날이었다, 아들이 작년 12월 군대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역을 했다. 어딘가 서운했던 우리 가족은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 완전체로 마주 앉았다. 이유는 딸의 이사에 손길을 보태기 위함이었다. 서울로 취업을 한 딸의 방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통해 많은 집을 알아봤다. 집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 어렵고, 가격이 맞으면, 환경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작년 12월말부터 알아보던 집들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전세로 이사를 결정했다. 물론 기존의 방값보다는 1.5배 점프한 가격으로 계약을 했다. 딸은 혼자 알아서 이사를 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부모 마음이 그럴 수는 없다. 직장생활에 안쓰러운 딸을 생각하며, 아들을 앞세워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날씨 탓에 세상살이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이사할 집에 용역을 맡겨 대청소를 진행했다. 매스꺼운 소독약 냄새에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환기와 집 안 이곳저곳을 확인하고, 가족들과 부대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내일 이사 일정을 확인 한 후, 짧은 담소를 나눈 뒤 내일은 날씨가 풀려  따뜻하길 기도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이사를 오지 않아 주방에는 비상용으로 딸이 가져 온 뚜껑 없는 냄비 하나와 밥그릇, 수저, 숟가락 세 개가 전부였다. 김치도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약간의 귤과 떡대(‘가래떡-가는 원통형으로 길게 뽑아 일정한 길이로 자른 흰떡)’의 전북 방언), 생수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장만해 온 것이었다. 아내는 새벽부터 주방에서 가족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나마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볍게 ‘떡국’ 세 그릇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식탁도 없어 바닥에서 쪼그리고  앉아 ‘떡국’으로 최고의 만찬을 누리게 됐다. 다양하고 먹음직스런 음식이 가득한 고급 음식점은 아니지만, 정성으로 가족들을 위해 만든 ‘떡국’은 나름 맛이 제법이었다. ‘떡국’을 입 안 가득 채워 넣고. 아들을 보았다. 나름 녀석도 나쁘지 않은 지,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김치나 반찬 하나 없이 ‘떡국’ 한 그릇에 만족한 아침 한 끼로 함께 했다.
 
시간이 흘러 이삿짐이 들어오고 서로 열심을 다하여 짐을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허무하게 저물었다. 저녁은 낙지로 결정하고, 집 근처의 음식점을 찾았다.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우는’ 낙지를 먹고, 가족들이 다시 힘을 내기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추운 날씨에 길거리 곳곳에는 삶의 치열한 현장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추위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전단지를 내미는 알바생이나, 생존을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작은 가게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낙지연포탕과 파전 등을 배불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전통찻집을 찾았다. 아들과 아내는 쌍화차, 나는 대추차를, 딸은 수정과를 마시며 아이들과의 세대차를 줄이고자 했다. 차를 나누며, 아침 ‘떡국 한 그릇의 행복’이 화두가 됐다. 최고의 만찬이 된 그 ‘떡국’이 그리워질 것이라 서로 의견이 통일됐다. 누구에게는 정말 생존을 위한 한 그릇의 ‘떡국’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찮은 음식이 될 수도 있다.
 
음식은 나눠야 제 맛이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음식은, 그 어떤 것이라도 소중하다. 아무리 맛나고 비싼 음식이라도 혼자 먹으면 제 맛을 음미하지 못할 것이다. 분위기가 좋아야 음식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힘이 들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가족과 지인들을 챙기고 아껴주며, 사소한 정이라도 나눠야 건강한 사회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무척 추운 2월의 첫째 날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자연의 흐름과 함께 매일 매일 소소한 최고의 만찬을 이어가자. 그 사이에 새록새록 따뜻한 ‘정’과 ‘사랑’이 자라날 것이다. ‘나’보다는 ‘너’, ‘우리’를 서로서로 ‘고마움’으로 가득 채워보자.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오늘은 어떤 ‘최고의 만찬’이 준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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