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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자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자. 거친 ‘눈발’이 그립다.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이던 그런 ‘눈발’이 그립다. 그런데 현실은 정말 아이러니 하다. 겨울은 겨울이다. 그렇지만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 이상 기후에 따른 결과이다. 미국의 일부 지역은 ‘눈과 기온’의 급강하로 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물론 예전처럼 ‘눈’이 내리는 날을 기다리며 동심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이 시대의 어르신, 직장인은 ‘눈’이 내리면 걱정이 앞선다. 반들반들하게 빙판으로 변해버린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걸음을 옮기거나, 차를 운전하기에는 정말 힘겹다. 다행스럽게 아무런 사고도 없이 집에 도착한다 해도 피곤함에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어르신, 직장인 심지어 어린아이나 부녀자에게도 빙판으로 인한 사고는 심각한 골절을 유발할 수도 있는 ‘장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부분에서 불타오르는 ‘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하나 이상은 누구에게나 저축돼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겨울 스포츠 하면, 동네 마을 어귀 자그마한 논바닥이나 강가의 얼음 위에서 팽이치기나 썰매를 만들어 노는 것이 최고의 놀이였다. 이런 우리의 전통놀이는 지자체의 노력으로 도심에서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강원도 어느 지역의 00축제나 지방 산골의 놀이시설을 찾아야만 즐길 수 있는 잊혀져가는 문화가 되고 말았다. 반면, 현대인의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는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즐기거나 ‘스키’를 즐기는 것이다. ‘스키’를 즐기는 인구가 많이 증가하고, 스케이트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추운 겨울 날씨가 절대적이며, 스키장은 ‘눈’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하늘은 ‘눈’을 풍성하게 내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스키장은 '기계를 이용한 인공 눈'을 만들어 ‘스키’장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자. ‘눈’이 많이 내리면 우리의 전통놀이의 장소인 논바닥이나 강가에서의 팽이치기나 썰매놀이는 어렵다. 눈이 쌓인 그들의 얼음은 팽이를 돌릴 수 없고 썰매로 질주할 수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바로 이런 놀이문화가 10-30대 젊은이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문화로 치부해 버리는 성향이 우세하다.
 
 대표적인 예로는 ‘판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판소리’도 젊은 층은 물론 386세대에게서 조차도 영화의 한 장면이나 가끔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우세하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겨울’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거칠게 몰아치는 ‘눈발’이 그립다. 길이 얼고 온 세상을 흰 물감으로 물들이는 그런 강력한 ‘눈발’이 그립다.
 
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자. ‘눈발’이 내리치는 길거리를 걷다보면,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 ‘호떡장수’ 아저씨, 뜨끈뜨끈한 ‘어묵국물’ 아줌마, 슈퍼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호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추억의 먹거리가 돼버린 이들을 깔끔한 가게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아쉬움에 예전의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발걸음을 총총 옮기고 있다. 여유를 찾기 힘든 현대인의 삶 속에서 그나마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던 사람과 사람의 정을 찾는 것이 어려운 숙제가 됐다.
 
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자.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필자 역시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추워서 좋고, ‘눈’이라는 ‘하얀 무설탕’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마냥 좋다. 특히, 필자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밤이 길어서 좋다. 젊은 시절, 그 기나긴 겨울밤을 ‘책을 읽으며’ 친구, 가족, 그리운 이에게 편지나 엽서를 쓰며, 성장의 씨앗을 뿌렸던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그 계절의 포인트는 ‘눈’, ‘눈발’, ‘함박눈’이다.  
 
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자.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그대에게 가고 싶다>중에서-,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진눈깨비는 되지 말고/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며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편지가 되고/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새살이 되자/는 시구를 반복해서 여러 번 읽어 본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하늘을 바라보며, 세상을 어루만져 포용할 수 있는 따뜻한 ‘함박눈’이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도한다. 우리 모두 따뜻한 ‘함박눈’이 돼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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