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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 병원 이야기(1) -올리버 알 에비슨과 세브란스-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낯설지가 않다. 심지어 ‘세브란스’ 병원은 가까운 이웃처럼 친숙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원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종합병원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의 대답은 물음표(?)인 경우가 많다. ‘세브란스 병원’하면 익숙하지만, 구체적으로 아는 지식은 ‘신촌’, ‘연세대학교’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기우다. 왜냐하면, 민혜숙 목사님의 ‘세브란스 이야기’-올리버 알 에비슨과 세브란스-, 케포이북스, 2018(이하 작가 이름 생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몰랐다. 세브란스 병원에 에비슨의 동상이 서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것도 병원에 가 보지 않았다면 변명할 구실이라도 있을 것이다.-(중략)-본관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있던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만 말없이 앨범 속에 꽂혀 있다. -(중략)- 그게 제중원 건물이라는 것을 몰랐다.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매일 버스를 내려 백양로를 따라 오르내리면서도 세브란스가 그냥 병원 이름인 줄만 알았다. 그가 이 땅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것도-(중략)-하나님이 에비슨 박사의 파트너로 보내서 그를 후원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중략)- 내가 살고 있는 광주 양림동에 고든 에비슨의 동상이 세워졌다."(민혜숙, 위의 책, 3-5쪽.)
 
작가의 머리말 일부이다. ‘나는 몰랐다’는 작가의 말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놓치고 만 ‘세브란스’에 대한 지식의 한계를 대변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책을 펼치고 만난 머리말의 첫 문장, ‘나는 몰랐다’에 한 동안 눈이 머물렀다. ‘나는 몰랐다’는 한 마디의 짧은 외침은, ‘그런데 왜 그렇게 몰랐을까?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위의 책, 5쪽.)
 
이러한 간절함은 ‘나는 연세대학에서 에비슨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언더우드에 대해, 세브란스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중략)-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연세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언더우드나 에비슨, 그리고 세브란스에 대해 알고 있을까?’(위의 책, 5-6쪽.)라고 의문을 제기함에서 출발한다. 더욱 ‘세브란스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에 대한 성찰은 ‘그들이 모르고 있다면 가르쳐주지 않은 선배의 탓일까?’, '학교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학교 탓일까?'라는 질문을 소설 형식으로 독자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올리버 알 에비슨은 알몬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잣대에 눈금을 하나 더 새기기 위해 퍼드에 있는 사범학교에 진학기하기로 작정한다. 그 과정을 마치면 초등학교 교사자격인 제3종 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교사자격증이 있다고 바로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에서부터 감리교 집안이던 에비슨 집안의 신앙노선에 따라 그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략)- 올리버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유명한 시를 암송하고 명작을 읽고 좋은 구절을 외우도록 했다. -(중략)-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하고 훈련한 모든 것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은 올리버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위의 책, 25-26쪽.)
 
반쯤 포기 상태에 접어들 쯤, 스미스 폴즈에서 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접하게 된다. 이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자 그는 마음이 편해진다. 1878년 1월 올리버는 스미스 폴즈에 있는 허튼 초등학교의 교사가 된다. 아이들과 친해진 올리버는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한 발 한 발 자신을 정확하게 리드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그는 대장장이 아버지 반스 씨의 딸 제니와 가까워진다. 그런데 제니의 가족과 가까워질수록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바로 자신의 월급으로는 제니와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상급 교사자격증을 얻기 위해 자치령의 수도인 오타와의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한다. 3년의 과정을 마치고 스미스 폴즈로 돌아온다. 그러나 제니의 반응은 냉랭하다. 어머니 덕분-“가끔 편지라도 보내지 그랬어”(위의 책, 29쪽.)-에 제니를 찾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나 제니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알몬트의 집으로 돌아온다.
 
발전적인 인생을 위해 교사보다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신념으로 토론토 대학에 입학한다. 어느 날 지역신문에 스미스 폴즈에 있는 약방에서 견습공을 필요하다는 광고를 접하게 된다. 견습공으로 들어간 약방에는 유능한 약사가 있다. 그 약사에게 신임을 얻게 되고, 재량권과 의사의 처방을 제조하는 권한도 부여 받는다. 제니와는 한 블록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만, 약방 일로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약방에서의 3년은 제니를 결혼 상대자로 입지를 굳힌 것이다. 올리버는 약사시험을 치르기 전에 제니와 약혼을 한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약사 자격을 취득한다.
 
어느 날, 토론토 약학교의 셔틀 위스 교장에게서 약학교의 식물학 교수가 돼달라는 전보를 받는다. 그는 제니와의 결혼과 교수가 되고 싶다는 또 다른 꿈에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제니의 이해로 교수가 되고 생활도 안정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셔틀 위스 교장의 제안으로 토론토 의과대학교에 입학한다. 1년 과정을 마친 뒤, 제니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1885년 7월 28일, 올리버와 제니는 결혼식을 올린다.
 
늘 행복하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던 올리버에게 장남인 글래드 스톤이 돌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이 나더니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올리버는 자신의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속절없이 하늘나라로 보낸 데 대해서 허탈감을 맛본다."(위의 책, 53쪽.) 삶과 죽음의 사이는 무척 가까웠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시 로버트 에이 하디라는 학생이 토론토와 트리니디 두 의과대학 학생 중 기독교 신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기독교 청년회 즉 YMCA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중략)- 토론토 대학 출신인 제임스 에스 게일을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었다.”(위의 책, 57쪽.)
 
“어느 날, 올리버는 언더우드를 집으로 초청해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훌륭한 선교사와 며칠 동안 함께 _중략)- ”혹시 에비슨 교수가 한국으로 오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식사 중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올리버에게 물었다. ”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부르신다면 순종하기로 이미 아내와 이야기가 돼 있지만 저는 여기서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확고해요. 하나님은 토론토의 최고 의사를 부르고 계십니다" "과찬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서면 따르겠습니다"(위의 책,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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