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터델의 대학원 과정에 등록을 하고, 잘 적응해서 교사자격증도 어렵지 않게 얻었다. 그리고 콜로라도스프링스스쿨 교사로 부임한다. 학교는 생각보다 좋았다. 그래서 가족들과 피크닉을 자주 가게 됐다. 그 자리에서 노인을 만나게 되고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노인은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할 리가 없지, 그건 우리에게 아주 수치스런 전쟁이었거든. -(중략)- 전쟁터가 얼마나 추웠는지 생각만해도 끔찍해. 총에 맞아 죽은 것 보다 얼어 죽은 사람이 더 많았을 거야.”(위의 책, 42쪽.)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욕의 웨스트체스터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 자리를 제안해 왔다. 이 전화 한 통화에 나의 마음은 요동쳤다.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기에 뉴욕행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다 보니 우수교사로 선발됐다, 그런데 가장 기쁜 것은 부상(副賞)으로 3주간의 한국여행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릴까 고민하다가 ‘한국’이라는 단어를 강조해 전화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네드에게 축하하며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할아버지가 참전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침묵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한국은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을 쉽게 지울 수는 없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여러 곳을 방문하고 환대를 받았다.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판문점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땅굴견학 등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그 날은 무척 피곤했다. “여보세요? 실례지만 당신이 포니씨 맞습니까? -(중략)-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당신 집안에 에드워드 포니라는 사람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위의 책, 99쪽.) 호텔로 걸려 온 이 전화는 다음날 만나자는 일방적인 약속으로 마무리 됐다.
“반갑습니다. 나는 현봉학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중략)- 나는 한국전쟁 때 당신의 할아버지와 함께 많은 일을 했습니다. -(중략)- 제 아버지는 한 번도 할아버지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중략)- 이상한 일이군요. 당신의 할아버지는 한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존경받는 분입니다.”(위의 책, 60-61쪽.)
“다음날 저녁, 그는 나를 다시 식사에 초대했다. 그는 내 할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책을 한 권 가지고 왔다. -(중략)- ‘크리스마스 카고’라고 흥남철수 작전에 대해 쓴 책입니다."(위의 책, 63-64쪽.)
현봉학 박사를 통해 전해들은 할아버지는 대단한 일을 하신 분이라는 것을 확인해 줬다. 한국에 다녀온 후 나의 삶은 달라졌다. 현봉학 박사가 보내 준 영어 자료를 바탕으로 할아버지의 행적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전쟁에 관해서 미국의 입장에 대해 가르치려고 시도했다. 아버지에게 책을 배달했다. 그리고 ‘154쪽을 보세요’ 라는 메모를 남겼다.
“1909년에 태어나 1965년에 잠들다. 에드워드 포니 준장,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한국전에 참전”(위의 책, 68쪽.)
현봉학 박사는 기독교인이다. 제해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는 집에 갔다가 러시아 군이 공산당을 앞세우고 와서 그 집 아이의 그랜드 피아노를 뺏어 갔다는 말을 들었다. 분명 해방이 됐는데 말이다. “알몬드 소장은 현봉학을 마치 고향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그럼, 당신 고향은 어디입니까? 함흥입니다.-(중략)- 그럼 며칠 후 함흥에서 아주 큰 행사가 있으니 그때 봅시다.”(위의 책, 81쪽.) 정말, 며칠 후 10군단에서 군용기를 보내주었다. ‘오늘부터 미국 10군단 민사부 고문으로 임명함.’(위의 책, 82쪽.)으로 현봉학은 함흥에 눌러앉게 됐다.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엄청난 병력 때문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추위였다. 적군과 아군의 구별 없이 많은 병사들이 얼어 죽었다. 현봉학은 용기를 내서 알몬드 소장을 만나러 갔다. 그러나 알몬드 소장은 흥남부두를 통해 빠르게 철수하는데 민간인까지 데리고 것은 위험하고 불가능한 일임을 분명히 밝힌다. “나와 함께 들어가 봅시다. -(중략)-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어요. -(중략)- 어제 포니 대령과 상의한 결과 배의 화물을 잘 조절하면 약 4천 명 정도는 ……”(위의 책, 93-94쪽.) 소식에 피난민들은 흥남부두로 모여든다. 미군들도 당황한다. 배도 부족한 형편이다.
“이 사람들을 두고 갈 수는 없다. 모두 구출해야 한다. -(중략)- 193척이나 되는 배들이 동원된 흥남철수 작전의 대미는 메리디스 빅토리호가 장식하게 된다. 하나님, 이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위의 책, 10-105쪽.) 라루 선장은 지옥이 있다면, 이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 생각했다.
현 박사와 함께 알링턴 국립묘지에 다녀온 후 뉴저지에 있는 크리스천스쿨의 교장으로 일하게 된다. 2005년, 한국의 흥남철수기념비 제막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아버지를 초청하고자 하다가 여의치 않아 나를 초청한 것이다. “내가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이 있어서 고맙지만 갈 수 없다.”(위의 책,125쪽.)는 아버지의 말, 분명히 ‘고맙다’는 표현이 있었다.
이 소설은 통역사로서 민간인을 피난시키기 위해 헌신한 현봉학 박사, 포니 대령과 알몬드 소장, 그리고 그 생존자들을 이어주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즉, 포니 대령의 아들인 에드워드 포니와 손자인 네드 포니를 주인공과 화자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군인이었던 아빠에 대한 섭섭함과 아들 네드의 해군 입대를 못마땅해 하는 에드워드 포니,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네드 포니의 갈등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우연하게 아빠가 숨기려고 하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현봉학 박사에게서 듣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포니 대령과 한국에 대해 이해의 폭을 좁히게 된다.
이 소설의 ‘매러디스 빅토리아호’는 지난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왜냐하면,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운 기록 때문이다. 이미 알고 이는 바와 같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심리 상태와 갈등은 모두 허구로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잊을 수 없는 6·25 전쟁의 아비규환 가운데 민간인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군대는 무기를 버리고 상인은 물건을 버렸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