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을 위해 한 일이었지만, 아이가 죽어 부모로서 속죄하며 살겠다.”
2013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울주군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계모가 한 말이다. 아동학대 예방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아동학대 가해자의 변명은 한결같다. 바로‘학대’가 아닌 ‘훈육’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때린 것은 맞지만 훈육을 위한 일 이었다’라며 엄연한 폭력을 ‘훈육’이라고 우기는 것은 못된 부모들만의 변명은 아니다. “내 자식 내가 가르친다는데...”라며, 자식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을 훈육이라 고집하는 잘못된 인식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과연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아동학대는 아동의 인권에 대한 무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이 아동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한다면 아동 앞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쉽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아동의 인권에 대해 더욱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필수적이다. 물론, 아동은 어른보다 살아온 시간이 짧아 미성숙한 행동을 보이거나 때론 성급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 어른의 도움과 가르침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성이 아동에 대한 무시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아동학대가 아동에 대한 어른의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갑질’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 신조어로써 흔히 사회적 강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약자에게 횡포를 부릴 때 대개 ‘갑질’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갑질’은 아동학대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동을 때리는 행위(신체학대), 아동의 의사를 무시하고 어른의 마음대로 선택을 강요하거나 위협하는 행위(정서학대),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보호자가 아동을 보호하지 않고 버리는 행위(방임·유기) 등 아동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들이 바로 어른들의 ‘갑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면 어른의 스트레스나 기분에 따라 아동에 대한 학대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행동은 명백한 ‘갑질’에 해당한다.
아동학대에 대한 미흡한 처벌과 부적절한 조치, 여전한 무관심도 인식만큼 심각한 문제다. 어른과 어른 사이의 폭행은 단순하고 가벼워도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수위는 훈육과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이유라는 명목으로 보호 처분 수준으로만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동학대 사건을 살펴볼 때, 더욱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아동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이 관습 혹은 전통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훈육’이라는 위장된 행위로 정당화 되고 있지 않은지, 아이를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혼내는 용도로 체벌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뒤돌아봐야 한다. 어른이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세상, 우리 사회의 악(惡) 요소인 아동학대가 예방되고 아동이 행복한 세상을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