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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만난다는 것



김 은 영  <늘사랑교회 목사, 소통과공감 심리상담사>



일주일에 한 번씩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요를 부른다. 어린 시절 추억의 옛일을 생각하면서 동요를 부르는 것은 정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가요 일색으로 점철된 오늘의 노래환경에서 동요만큼 순수하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없다.

일주일에 하루 2시간씩 아이들을 만나지만 그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탓에 옛날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현대의 환경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생각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자라던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문화를 받아들이는 환경적인 영향에 따라 아이들은 신세대, 우리는 쉰세대라고 불리는 자조어까지 생겼다. 그만큼 아이들의 성장 속도나 받아들이는 생활환경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기 때문이다.
 
요즈음 초등학생들도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수업 외의 시간에는 혼자 놀기가 가능해질 정도의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있어, 또래들과 어울림이 없어도 부자연스럽지 않을 정도로 문명의 이기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다. 노래 역시 일반적인 걸그룹이나 아이돌들의 대중가요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춤과 노래 등으로 세대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기초적인 성장단계가 초등학생들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취학 직전 유치원 때부터 이러한 문화의 환경 속에 성장하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더욱더 적응하는 속도가 빨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화의 적응이 긍정적인 면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일상을 불편하게 할 정도의 정서를 가지고 성장기의 문화와 생활에 적응하기보다는 벌써 청소년이 되고 어른들이 하는 모양새를 따라잡기 위해 행세하는 아이들을 보기도 한다. 개인과 집단으로 어울리면서 그 나이에 맞는 정서를 가지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내 아이 기죽지 않게 한다’는 명분 아래 초등학생 시절부터 과잉의 문화적응과 보살핌으로 문제를 야기 시키기도 한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순수하다. 누군가가 성선설과 성악설을 주창했지만 태어나는 순간에 악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장기의 환경에 따라 본의 아니게 악을 접하게 되고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분간이 어려워 자연스럽게 악에 빠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집단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활환경과 문화적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악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성장기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순수함 그대로이다. 현대의 문화적 환경과 가치에 따라 형태와 내용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아이들의 생활은 아직도 존재의 의미가 대부분이고 이를 잘 배우고 익힘으로써 존재 이상의 삶을 벗어나 새로운 가치 창출의 인간 본성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동요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의 심성이 바로 순수성을 담보로 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 나 자신의 순수함을 추억의 옛날이 아닌 지금 현대의 삶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움과 함께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보다 더 좋은 환경 속에 미래의 삶에 대한 상담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가 가지는 생활의 차이는 이미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 역시 자신의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 보편적인 생활수준이 아닌 빈부에 따라 가지는 환경 속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 정부에서 무상급식 등으로 차별 없는 기본복지를 주장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무상복지를 좌파적 개념으로 보고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에 빈부의 격차에 따라 부모세대가 가지는 차이점을 크게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결국, 아이들을 만나면서 순수함을 매개로 하여 미래세대의 앞날을 예측해 보기도 한다. 동요를 부르면서 만나는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 추억의 그날 속에 순수함을 잘 가지고 있을까?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삶을 영위한다. 간혹 과실이든 의도적이든 때 아닌 잘못으로 문제가 될 때, 그 옛날 성장기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새로운 추억 속에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마음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어떤 목적으로 아이들을 만나냐 하는 것이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이든지 만남을 통해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면 오늘뿐이 아닌 미래사회의 행복을 영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오늘의 동요 부르기를 통해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먼 미래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만남의 즐거움으로 오늘도 발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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