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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을 수 없는 길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혹자는 ‘실패’를 많이 경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실패’의 경험이 많을수록 단단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많이 경험한 사람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설령, ‘실패’를 이겨내고, ‘성공’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다가와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 현실에 조금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출마한 ‘반장 선거’에서 단 몇 표차로 ‘탈락’이라는 쓰라린 추억이 바로 그 ‘성공’이라는 영광을 만나기 위한 출발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아예 반장 선거에 출마를 하지 않고, 투표를 통해 지켜보는 ‘탈락’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면서 위안을 삼고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초, 중, 고, 대학, 대학원 과정을 두루 거쳐 왔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반장, 부반장, 과대표, 대의원 등을 경험 한 적이 없다.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주변의 그 누구 하나 추천하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한 아이’로 남아 자신의 일을 충실히 준비해가는 구성원으로서 협조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의 ‘희망’은 함께 하는 우리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함께 잡은 손으로 따스하게 번져오는 온기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함께 있는 서로를 간절하게 기다렸을지 모른다. ‘시련’이 준비된 삶의 벌판에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함께 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서로의 작은 열정이 불꽃이 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그런 ‘우리’를 만나고 싶다. 그 길은 우리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너무 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있는 그곳에 작은 ‘밀알’이 돼 소소한 삶에서, 정성을 다해 일을 하는 기쁨과 함께하는 길이 우리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이 비록 고통이라도, ‘함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그런 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도종환 시인은 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의 1행은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라고 시작한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 종 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 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 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 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위의 시, 19, 20행에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의 어느 중간쯤에 서 있을 우리들을 그려본다. 정말 발을 내딛고 싶지 않았던 그 길이다. 그렇지만,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좋으나 싫으나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이다.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 길은 지금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가끔은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라는 고민 아닌 고민으로 우울해하고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길의 선택이 어떻든 나의 길임을 이정하고 받아들이는 결론에 다다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이 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포자기’나 ‘자기연민’은 아니다. 수많이 주어진 그 길, 그 길에서 다른 길에 호기심이 없다면 우리의 영혼이 너무나 초라하고 안타깝지 않겠는가?
 

길은 우리 앞에 늘 준비되고 선택의 길은 열려 있다. 그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영광도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을 선택하고 과감하고 열정적으로 걸어가는 특정의 모든 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도전적이고 희망적인 그대들의 도전에 우리의 미래는 밝게 빛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8행)로 인해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는 행복한 길들이 함께 하는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13행~16행) ‘실패’, ‘성공’,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숙함으로 당황하지, 말고 당당하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에 도전하는 강단지고 정열적인 ‘동행’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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