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 꿈을 열정적으로 키우게 해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이 사람에 대한 일대기를 잠깐 언급하기로 한다.
평생 고흐는(1853-1890) 네덜란드 남부에 있는 조그만 마을 흐로트쥔데르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고흐는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화가가 되기로 한 것은 어른이 되고 한참 뒤에 결정한 일이었다.
고흐는 종교에 몰두하게 돼 24세 때에는 마침내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암스테르담과 브뤼셀에서 3년 동안 목사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교회 시험에 계속 낙제를 하자 고흐는 황량한 탄광 지대로 가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선교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돕고 그들에게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짚 위에서 잠을 자는 생활을 했다.
27세 때 고흐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화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네덜란드 곳곳에 있는 싸구려 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드렌터라는 황량한 시골에 살며 그곳에 있는 주민들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자주 병에 걸리고 절망에 빠졌지만, 화가로서 성공하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첫 번째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고흐가 배웠던 모든 것을 집약해서 보여 주는 작품이다.
1885년 말경에 고흐는 앤트워프와 파리의 화가들이 보여 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나게 된다. 파리에 온 뒤 그림 상인이 된 동생 테오와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에서 2년 동안 살았다. 당시 프랑스 미술은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흐는 테오를 통해 새로운 '인상주의' 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화가들을 만나게 됐다. 어두운 북부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 온 고흐에게 이들이 끼친 영향은 아주 컸다.
1888년 여름에 고흐는 그 유명한 '해바라기'를 비롯한 많은 걸작을 그려 냈다. 그는 자주정신을 잃었고 또 위장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고흐는 엄청난 양의 물감을 써 가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댄다.
1888년 12월에 고흐와 고갱은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됐다. 고갱과의 다툼 후 정신이 혼란해져서 자신의 귀 한 부분을 잘라 내고 말았다. 그 후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그렸다. 고흐는 자주 병에 걸리고 환각에 빠졌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태는 더욱더 악화했다.
1889년 5월에 고흐는 아를 병원에서 생 레미 정신병원으로 옮겨간 후 거기서 1년을 지냈다. 여전히 신경발작과 병치레에 시달리면서도 고흐는 천천히 회복하는 낌새를 보였고 그림도 계속 그려나갔다.
1890년 5월에 고흐는 생 레미 정신병원을 떠나 파리로 갔다. 오베르에서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 70일 동안 거의 하루에 한 점씩 그리다시피 했다. 그가 이때 그린 마지막 작품들은 들끓는 대지와 하늘을 표현하고 있다. 가로 폭이 세로 폭의 두 배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으로 죽기 며칠 전에 그렸다.
동생 테오는 고흐의 정신적 물질적 지주였다. 오베르에서 두 달을 보낸 후 고흐는 완전히 기운을 잃고 말았다. 1890년 7월 27일 그는 들에 나가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이틀 후에 고흐는 테오의 품 안에서 숨을 거뒀다. 고흐가 죽고 난 후 그의 작품들은 유명해졌고 많은 화가가 그의 대담한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았다. 고흐의 고통은 헛되이 끝나 버린 것이 아니며 고뇌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들을 보고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서양 예술가들의 열전을 보면 이 분야에 종사했던 유명한 사람들의 기행(奇行)은 충격적인 면이 많다. 음악가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대부분 유명한 서양 음악가들 역시 그들의 삶이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은 시간예술이지만 미술은 공간예술로 눈으로 보이는 작품세계이기에 미술가들의 삶은 한층 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인식하기 어려운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현대문명의 삶의 질에 대한 척도는 문화와 예술의 접근성이다. 과거 이들이 새겨놓았던 수많은 미술작품이 지금은 위대한 세계문화유산이 됐고 금전적인 값어치로 본다는 화폐가치 이상의 금괴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2차 대전 시기 독일의 히틀러가 감추고 소유하고자 했던 대부분 예술품이 바로 미술작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소유와 존재의 가치로만 인식됐던 미술작품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실용적 예술 가치로 평가받는다. 미술치료라는 장르가 개발되면서 위 제목처럼 그림으로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라는 제목이 부여되곤 한다.
또한, 동양에서의 미술은 사실상 서예작품과 조각작품으로 구분돼 서예작품 대부분을 동양화라 칭하고 있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을 통해 인류문명의 발달사를 유추해 보기도 하면서 그리 먼 시절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빈센트 반 고흐를 통해 마음의 문을 새롭게 열고 그림에 대해 예술의 가치와 인식이 다시 한번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