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담배’는 인생, ‘술’은 철학(1)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은 ‘그리운 이’가 있다. 그 ‘그리운 이’는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부모’, ‘절친’, ‘군대동기’, ‘각종 학교의 은사님’, ‘사랑하는 사람’, ‘첫사랑’ 등 다양할 것이다. 나도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그리운 이’가 있다. 근 30년 이상, 소식두절인 선배가 불현 듯 그리워진 날이 있다. 그 선배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그 선배는 ‘술’과 ‘담배’에는 그 어느 전문가 못지않은 전문가였다.

 
어릴 적 나는 ‘술’과 ‘담배’에 대한 피해망상으로 힘들어했다. 새벽이면, 좁은 방에서 연신 뿜어대던 아버지의 담배연기가 지금까지 담배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술’에 대한 아버지와의 기억들은 참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몹쓸 기억들이 많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술’과 ‘담배’가 친할 수 없는 벽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담배’는 몰라도 ‘술’을 권하는 직장과 모임이 축제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직장은 기독교 정신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하는 현장이어서 ‘술’과 ‘담배’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어떤 어려움이 있다한들, 이보다 축복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정년퇴임을 하셨지만, ‘술’과 ‘담배’를 기호식품으로 즐기시던 분들도 계셨다.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술’과 ‘담배’가 친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정말 행복하다.

 
그래서 더욱 그 선배가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다. 늘, 도서관과 교수님 연구실에서 공부에 열중이던 나를 찾아와 찐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인생철학을 펼치시던 그 선배님이 요즘 그리운 것은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에 슬퍼진다. 늘, 시간만 허락되면 구겨진 점퍼 호주머니에서 꺼내 피워 물던 그 담배와 연기 속에 남아 있는 선배의 기억은 이리저리 수소문해도 지금 소식을 알 수 없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후배를 통해 알아보니 결혼을 해서 천안 어디에선가 지내시는 것 같다는 것이 전부다. 이래저래 서로의 공간에서 꿈을 향해 살아내다 보니 소식이 끊겨버렸다. 후회가 된다. 소중한 선후배 친구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가난한 대학생들이 호주머니를 다 털어 찾았던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처음 그 선배를 만났다. 소주 한 잔을 들고 상추튀김을 우걱우걱 씹어대던 그 선배는 알 수 없는 무게감으로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그 선배는 늘 책을 들고 다녔다. 한 마디로 ‘술’과 ‘담배’를 피는 시간이외에는 ‘책 읽기’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런 선배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은 신입생인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얼굴 한 번 보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묵직한 선배와 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시골에서 올라온, 세상에 불만이 많던 나에게 삐딱하고 세상 불만을 다 짊어진 듯한 선배의 모습은 바로 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왜 내가 대학에 왔는지? 졸업하고 10년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원만한 인간관계도, 개념도, 목표도 없이 생활하다보니 어찌어찌 시간이 훅 지나가 버렸다. 1학기 종강을 마친 어느 날이었던가? 선배가 우연하게도 도서관에서 일부 교과목의 마무리 리포트를 작성하던 나를 찾아왔다. “후배, 니 밥 묵었나? 선배하고 밥이나 묵자. 혼자 자취한다며? 매일 컵라면이나 먹고 공부한다며? 내가 순댓국 한 그릇 사줄께! 어뗘? 니, 부담스럽나? 그럼 그냥 가고?” “아닙니다. 선배님. 영광이죠? 지는, 갑작스러워서요”

 
그렇게 선배와 나는 가난한 대학생들이 즐겨 찾던 전주순대국밥을 찾아 자리를 잡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 그 선배가 내게 던진 첫 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여범아, 사랑하는 후배야, 니는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니? 어떤 철학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니?”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나는 속으로는 ‘이 선배 뭐야, 나를 학생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식화시키려고 '인생'과 '철학'을 이야기 화두로 삼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대답하는 것도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대답을 하지 않고 메뉴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담배’를 한 개피 꺼내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소주 반병과 순대국밥 두 그릇을 주문했다. 얼마나 자주 이 식당을 왕래했는지, 사장님이 선배 이름을 부르면서 ‘소주’는 덤이라고 하셨다. 담배를 다 피운 선배가 소주 한 잔을 나에게 건네면서 한 첫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선배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후배야, ‘담배’는 인생이고, ‘술’은 철학이란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