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전공한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친구 Y와 S가 있다. 두 친구 모두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한 똑똑한 친구들이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자리에서도, 늘 많은 대화와 소통으로 얇은 지식의 커다란 부분을 채워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요즘은 페북이나 SNS를 통해 그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어 고맙다. 이 두 친구의 공통점은 철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외에도 나와 가까운 곳에서 현재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돌아다보면, 신학을 통한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의 삶도 풍성해진 것이라 판단된다.
‘철학’하면,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선배가 있다. ‘술’은 인생이고, ‘담배’는 철학에 100% 공감한다던 그 선배는 외무고시를 준비중이였다. 1차에 두 번이나 합격을 하고도 2차를 넘지 못해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에 열중하던 그 선배가 보고프다. ‘50분 공부하고 10분 휴식’을 철저하게 반복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던 그 선배, 그 선배에게 10분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담배들이 죽어가는 전설의 시간이 축적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분이면 1개피 정도 태우는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담배를 이 선배는 죽장 피워 물곤 했다. 심지어 많이 피울 때는, 그 자리에서 3대까지 소화하고 다시 도서관 자리에 앉아 공부에 집중하곤 했다. 가히, 담배가 ‘철학’이라 할만 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에 비해 몸에서 니코틴 냄새는 별로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기억들은 ‘철학’을 전공하고 ‘신학’의 길을 통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과 ‘외무고시 1차’ 선배의 언쟁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부나 삶에 재미도 없이 반복되는 생활을 할 때면, 이 두 부류의 ‘대화 아닌 논쟁’이 장마 뒤의 소나기처럼 무료한 시간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청량음료와 같았다.
“긍게, 형님이 말씀하시는 ‘철학’은 그 철학이 아니랑게요! 아따, 어디다가 신성한 철학을 들먹인다요? 개똥철학 야그 그만 하이소. 지발.” “뭐셔, 개똥철학? 야그들아, 이 형님이 볼 때는 느그들이 하는 철학이 개똥철학으로 보이는디? 그려, 안그려.” “어디, 한 번 끝장을 보자는 거유, 형님?”
대화의 레퍼토리는 늘 같았다.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논쟁 아닌 싸음’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솔깃하다가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주변이 조용하다. 늘 그런 식으로 흐지부지 결론도 없이 ‘대화 아닌 논쟁’은 이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도서관 그 어디에서도 ‘외무고시 선배’가 보이질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장소를 옮겨 ‘죽기 살기로 공부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그 선배와의 추억이 멀어져갈 무렵으로 기억된다.
친구를 만나러 걸어가던 길에서 만난 얼굴이 ‘술은 철학, 담배는 인생’이라던 외무고시 그 선배를 만났다. 나는 큰 소리로 ‘오 마이 갓’을 외쳤다. 그 ‘외무고시 1차 선배’의 두 손에는 ‘00교회 예배주보’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는 거의 증오하다시피 한 찬송가를 부르며,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웬 시츄에이션’을 속으로 외치며, ‘뭐야? 뭐야?’를 되풀이했다. 그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손을 잡으며 00교회 예배에 한 번 참석해 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도에 열중했다.
“참, 후배야, 니 잘 지냈지? 철학과 그 아그들, Y와 S는 잘 있나? 혹시 갸들 만나면 전해주거라. 이 선배가 전도사가 됐다고 말여. 거기까지만 말하면, 이 선배에게 전화를 하지 않겠냐?” “아니, 뭐라고, ‘술’은 철학이고 ‘담배’는 인생이라더니? 어쩜 저리 바뀔 수가 있을까? 오 마이 갓”
나는 혹시나 해서 다급하게 선배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아는 그 선배인지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그 선배다. 그렇다면 지금 이 현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나에게 선배는 울먹이며 말을 맺지 못했다. 그때, 그 길가에서 내 두 손을 꼭 잡고 선배가 불러주던 찬송가(구 178장, 새찬송가 197장) 이사야 4장 4절의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에 마음이 복잡하고 복잡하다. 그 외무고시 선배는 지금 무슨 철학으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정답은 독자 여러분의 풍부한 상상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