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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유행가 가사처럼 ‘때가 되면’ ‘사랑을 고백’하고, 목표로 삼은 ‘꿈이 이뤄지는 것’이 현실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는 때가 되면 ‘이별을 만나’고, ‘실패에 직면’해야 한다. 이처럼 ‘때가 된다는 것’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돌아보면, 성장기의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시골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상에서 꿈과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 같다.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로, 발걸음을 옮기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시골에는 농사 이외에는 돈이 되는 일자리가 흔치 않았다. 다행히 농공단지라도 들어와 있으면, 공장의 월급쟁이로 나름 시골에서 돈 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이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도시에 대한 환상과 기대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둘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시골보다는 도시의 삶을 추구했던 것이 문화적 흐름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로,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러한 문화적 흐름도 바뀌게 돼 있다. 도시로, 도시로 발걸음을 옮기던 40~50대의 시청률 1위는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다. 끼가 넘치는 인기 개그맨들의 재치 넘치는 진행으로 ‘자연’은 이미 40~50대가 돌아가야 할 곳임을 안내해 주고 있다. 도시로, 도시로 발길을 옮겼던 그들이 이제는 ‘자연’이라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미리 돌아올 마음을 마음에다가 품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나이도 나이이지만, ‘살아내기’ 힘든 현실에다가 건강에 적신호는 켜지고 휴식이 필요한 그들에게 ‘자연’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처럼, 우리는 ‘때가 되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주어지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있고, 군인은 나라를 지켜야 할 때가 있고, 직장인은 업무에 충실해야 하고,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여유로움에다가 ‘자연’이라는 기대치가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은 때가 돼도 돌아갈 ‘자연(고향)’이 없는 경우도 많다. 고향을 방문해도 그 옛날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넘쳐나던 고향의 사사로운 ‘정’도 친구들과 뛰어놀던 오솔길도 이제는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자연을 찾아 ‘정’을 나누며,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참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때가 되면’ 그 자연을 향해 ‘낯설지 않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준비해야 할까? ‘때가 되면’, ‘때가 되면은’, 편안하게 따뜻한 차 한 잔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낮잠을 즐길 수 있는 ‘미래’를 떠올려 본다. ‘너무나 소박하다’라고, ‘너무 서민적이다’라고, ‘그건 아니잖아?’ 라고 핀잔을 받아도 좋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족, 아내, 친구, 직장동료, 동창, 동문, 선후배’ 등. 그 어디에서든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그들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 가자. 그것만이 후회하지 않을 ‘때’를 기다리는 가장 절실한 출발점이 아닐까?

 
막연하다 못해, 되는 대로, 아무런 준비 없이 ‘때’를 기다린다는 것. 그 자체가 계획이고 의미가 돼서는 곤란하다.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구상과 실천을 앞장세우는 도전정신만이 발전적인 ‘때’를 기다리는 준비된 자의 모습일 것이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이며, 어디에서 머무를 것인가? 실패하더라도 당당하게 ‘꿈의 고향’인 자연을 찾아가는 완행열차에 올라타자. 그래야만, ‘때가 되면, 때가 되면은’ 완성된 우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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