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나이가 차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 한다. 새벽 5시,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나를 휘감고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언제나 ‘청춘’은 함께할 친구일 줄 알았다. 마음은 청춘이고 머릿속 삶의 여정은 대학생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어졌다. 그냥, 내 마음대로 나이를 정하고 그 나이에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나름 재미나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새벽의 찬 기운을 몸으로 헤쳐 나가며 산책길을 나선다. 재잘거리는 새들의 합창 소리와 맑은 공기가 매력적이다. 마스크에 모자에 형형색색의 스포츠 복장 차림의 이름 모를 이웃과 함께 오늘도 하루의 삶을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 건강을 위해 많은 운동에 시간을 투자했다. 그중 지치지 않고 재미와 건강, 보람을 찾아 전념한 운동이 ‘배드민턴’이다. 지금도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종목이다. 그러나 ‘배드민턴’도 손목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이다 보니, 관절이 아프다. 그래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게 됐다.
놀랍게도 건강을 지키는 운동은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 삶의 가장 기초적인 ‘걷기, 달리기’가 그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헬스’, ‘복싱’, ‘요가’, ‘필라테스’ 등도 그 출발점은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 ‘걷기’와 ‘달리기’가 있다.
‘하루 만보를 걷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러나 하루에 만보를 지속적으로 걷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실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루 만보를 걷는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측정해 보면, 만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최근에는 모바일 어플을 통한 만보를 측정하고 때로는 캐시를 저축할 수 있는 동기유발 기능을 갖춘 만보기도 있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싱그러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그곳에 이어폰으로는 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의 신곡을 들으며 빠르게 걷는다. 이유도 목표도 없다. 단지 걷고 싶다. 걷고 싶어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인다.
젊은 시절 새벽기도에 열심이던 시절에도 이렇게 벌떡 일어나 걸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무엇이, 어떤 기운이, 목표가 이처럼 가볍게 일어나 걷게 만드는 것일까?
살을 빼기 위해서 걸으면 내딛는 발걸음이 참으로 힘겹게 다가올 것이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1주일에 얼마의 살을 지워버리려 한다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 스트레스는 폭식과 또 다른 장애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초래할 것이다. ‘즐기는 시간’이 많을수록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즐기는 시간’이 적다는 것은 ‘조급한’ 자신의 패턴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사소한 ‘걷기’에도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세상의 잣대를 다 ‘내려놓고’ 아이돌 음악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가볍게 ‘걷고’, 힘차게 ‘달려’보자. 오늘 내가 내딛는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만보, 10만보, 100만보 이상의 에너지가 충전될 것이다. 그 에너지는 이 사회의, 이 나라의, 우리 지구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걷기’ 만큼 훌륭한 운동도 없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걷기’ 운동에 동참하는 그 순간, 우리는 자연의 기초질서에 합류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린 정말 사소하지만 소중한 사실을 잊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걷기’의 교훈과 같이 혹여 우리의 삶에서 가장 기초적인 질서를 소홀히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없는지, 주변을 돌아보고 서로를 챙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욕심보다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걸으면서 자연과 사람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과 친숙해지자. 후회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틈’만 나면 움직이고, 그 움직임 속에서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그 ‘살아있음’으로 축척되는 개별적인 ‘캐시워크’를,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인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기부 어플’을 통해 함께하길 소망한다. ‘걸으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어’ 좋고, 그런 ‘캐시워크를 나눔’으로서 함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덤이 아닐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