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萬)에 하나(一)’라는 말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말은 ‘만(萬)을 잘해도 하나(一)를 잘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우리는 마음에 걱정이 하나씩은 있다. 그 근심이 많을수록 삶은 고단하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 해도 매 순간 마음과는 다른 그것이 미운 마음만 싹틀 뿐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사소한 걱정이 스트레스로 발전하지 않게 모색해야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걱정’하면 기억에 남는 교수님이 있다. 00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시절, 학과장님의 ‘만(萬)에 하나(一)’가 그것이다. 공문이나 학과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 ‘만(萬)에 하나(一)’ 라는 말씀을 최소 다섯 번 이상을 반복했다.
사소한 결정이라도 학과나 자신의 결정이 학교나 학생에 미칠 영향까지 걱정해서 일의 마무리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학과장님의 보이지 않는 별명은 ‘만(萬)에 하나(一)’이었다. 그래서 학과 회의는 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만(萬)에 하나(一)’ 학과장님의 뒤를 이어 보직을 담당한 젊은 교수님은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무엇이든 시원시원하게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주저함이 없이 해결했다.
물론, 이 시원한 결정이 다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은 너무나 성급한 결정으로 학과나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그 실수에 대하여 올바르게 해결해 나가는 적극적인 리더십은 배울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주변에서는 역시 ‘S 대학교 출신이라 다르다’ 는 칭찬 일색이었다.
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만(萬)에 하나(一)’ 교수님은 ‘결정’에 대한 꼼꼼한 성격이, 젊은 교수님은 ‘시원시원함’이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서로 아쉬움이 있는 패턴이다.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안정을 좋아한다. 그 안정이 바로 ‘만(萬)에 하나(一)’를 초래한다면,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만(萬)에 하나(一)’가 사회나 경제 발전의 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와 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는 어떤 스타일에 가까울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만(萬)에 하나(一)’보다는 시원시원한 결정 장애를 깨는 형태의 삶이 우세하지 않을까?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결정은 빠르고, 행동은 신중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만(萬)에 하나(一)’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결정을 해야 한다면 바른 판단으로 신중하면서도 빠른 것이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늦은 결정이 가져올 문제점을 먼저 생각한다면, 빠른 결정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만(萬)에 하나(一)’를 조용조용 말씀하며 신중하게 말씀하고 행동하던 교수님이, 가끔 생각나는 것은 결정을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는 증거이다. 너무 급하지 않게,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위해 매순간 ‘만(萬)에 하나(一)’ 교수님을 기억하련다.
그렇다면,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필자는 어떤 스타일로 주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혹여, 너무나 과감하고 성질 급한 나쁜 인간’으로 ‘만(萬)에 하나(一)’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일단 내가 편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불편하다면, 나도 ‘만(萬)에 하나(一)’의 구성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萬)에 하나(一)’, ‘만(萬)에 하나(一)’ 만으로 시간을 지체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만족감을 만들어가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만(萬)에 하나(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