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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의 웃픈 현실



이 경 로  <본지 논설위원/반태산작은도서관장>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 이후 사회현상에 대한 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채집생활시대인 석기시대 이후 언어의 기록과 문화발달의 체계는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체제와 함께 오늘의 문명사회를 이룩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스스로 집단생활을 영위하면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제도와 규범을 만들어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유·무언으로 약속하여 이를 어기면 처벌을 면하기 어려운 시대의 규범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을 단위를 벗어나 촌락이 모이고 주변과 사통팔달하면서 근거리를 중심으로 더욱더 강력한 부족 단위가 생성되고, 이것은 결국 의식주의 문제와 연계되어 삶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단이 이루게 된다. 결국, 이와 같은 부족 중심의 사회가 좀 더 나아가면서 국가라는 의미를 만들게 되고 이를 역사의 기록에서는 언어의 생성과 발달로 인하여 동양에서는 왕(王)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고 서양의 알파벳에서는 King이라는 단어로 압축됐다.

 
 제도와 규범 아래 만들어진 국가는 왕을 중심으로 통치체계가 만들어지고 이를 국가에서는 다스린다는 표현으로 왕과 신하 그리고 일반 백성들로 구분되다가, 아예 신분 계급을 만들면서 초기 고대국가에서는 힘 있는 자의 권력이 재산을 중심으로 모여지면서 강력한 통지체계의 근본을 이루게 된다. 어쩌면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그 중심에 모인 자들이 통치라는 개념으로 국가의 편제를 조직하고 다스리기 위해 규범을 만들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은 경제적인 상황 논리에 따라 정치적인 조직과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정설이다.

 
 인류의 시작은 먹고 사는 문제로 출발할 때 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경제적인 물질을 찾고자 할 때 자급 생산이 되지 않으면 다른 부족의 마을 또는 다른 지역의 인류에게서 필요한 것을 빼앗아 삶을 영위하는 것이 되는 데, 결국 이를 우리는 전쟁이라는 언어로 표현한다. 현대의 지구촌에서는 전쟁의 개념이 양상을 달리하고 있지만, 고대사회의 생활에서 전쟁이라는 표현의 적절성은 가장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는 경제적인 체계와 구조적인 시스템이 정치에 예속되고 말았다. 출발점의 지향이 바로 삶을 영위하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인 구조를 갖추고 해당 집단의 지도자를 옹위하면서 집단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권한을 주게 됐던 것이 차츰 사회구조와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어느덧 정치적인 환경과 형식들이 경제 질서를 지배하고 이를 이용하는 수단으로 바뀌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명사회의 시작이 언어를 기반으로 하면서 고조선과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단순하게 고려 500년과 조선 500년의 역사를 통해 약 2000년의 한반도 문명 시대를 이야기하곤 한다. 단군의 역사적 사실이 신화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는 5000여 년을 한반도에 머물렀던 고대 조상들의 생활방식과 문명 시대의 2000년 시대로 연계되면서 오늘의 찬란한 문화와 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다만 가까운 현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명의 시기가 이른 시일 내에 다가올수록 단순 체계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체제의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면서 정보를 이입하는 분량이 엄청나다는 것에만 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 대부분 고대로부터 봉건적인 정치체제가 전개되다가 불과 몇 백 년 전에 서양에서부터 대의적인 정치체제가 생성돼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형태로 분화하게 됐고 현재는 사회주의 개념이 전 세계 국가체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실패한 정치체제가 됐고 대부분 민주주의 체제의 개념을 방법만 다르게 하여 유지되면서 국가의 체계가 통치자들이 다스리되 권력을 위임받는 형태로 전개됐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더구나 국가형태의 광범위한 제도가 이를 분화하여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지방정부(우리는 지방자치단체라고 칭함)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역시 초대 지방정부가 일시적으로 이뤄졌다가 군사정부에 의해 사라졌다가 1991년도 부활하여 겨우 30년도 지나지 않을 정도가 역사가 정체돼 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다. 직접적인 국민통치가 어렵기 때문에 대의로 선출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위임하여 대리 통치하게 하는 제도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선출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건 간에 해당 직책에 옷을 입히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정치 실력이나 본분이 몸에 맞지 않지만 어쩌다 보니 절차상 윗사람들에게 눈이 맞아 정당공천을 받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선출직으로 선출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실력 없고 정책 결정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그 주변을 따르는 사람들은 논공행상으로 자리를 만들어 주는 등 누가 봐도 웃픈 현실에 가슴 아파하는 요즈음 일부 정치행태를 보면서 혀를 차기도 한다.

 
 요즈음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방공무원들을 계약직으로 운영하면서 개방형으로 일부 직을 열어놓고 있다. 기업적인 마인드를 통해 획일적이지 않고 관념적이지 않아 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직책에 문을 열어놓고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해당 자치단체장을 당시에 지지했던 사람들의 일자리 보전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특히 정책 홍보직등은 채용부문에서 짜고 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채용절차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낳기도 한다. 좋은 취지의 개방직 공무원 자리가 더 이상 웃픈 현실이 되지 않도록 제도와 규범을 정비하고 전문성 있는 채용위원들이 국리민복의 일원으로 참여할 때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더욱더 전문 행정행위의 첨단을 걷게 되고 더 이상 웃픈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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