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학교에 긴급 간부회의가 있어 출근했다. 학기 중 늘상 있어 온 회의의 연속이라 그다지 신경이 쓰이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회의는 회의다. 10시에 시작한 회의 진행이 1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다행하게도 회의 안건은 30분 정도 논의 후 마무리가 됐다.
점심은 모처럼 임실군 오수면에 위치한 형제반점(중국 음식점)을 찾았다. 평상시 학교 급식을 먹던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외식 아닌 외식이다. 학교가 면소재지에 위치해 있지만, 중국집 하나 없다. 우리학교 주변에는 단 2개만의 식당이 있을 뿐이다. 사매식당, 노적봉, 한식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그래서 선택은 늘 없다. 방학 중에는 도시락 지참이나, 가까운 남원, 임실 오수로 차를 몰아 식사를 마치는 방법뿐이다. 학기 중 아이들에게 피자나 통닭 등을 먹이고 싶을 경우도 매 한가지다. 어찌 보면, 인스턴트 음식을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접하지 않으니 긍정적인 삶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MSG가 없는 자연친화적인 음식을 먹는 것도 학교생활의 복이라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참고로 우리학교 급식은 학교 소유 논에서 재배한 우렁농법 쌀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오수에 있는 형제반점(중국 음식점)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를 잡고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오늘이 정말 장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는 말이 딱이다. 5일에 한 번 서는 장날이 오늘이었던 것이다. 시골 어르신들의 정담이 오가는 식당에 낯익은 학부모님 얼굴도 보인다. 다가와 졸업생의 학부모임을 밝히고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도 계신다. 점심을 먹기도 전에 그 정에 흠뻑 배가 부르다.
자장면, 잡채밥, 짬뽕 시간을 다투며 탁자에 올라왔다. 자장면을 시킨 나의 눈은 잡채밥, 짬뽕에 눈이 갔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말이 이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잠시 후 형제반점 사장이 군만두를 한 접시 불쑥 내민다. 시골 음식점에서 만날 수 있는 정, 그 자체이다.
이제는 추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대학시절. 대학생활의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면, 나는 자주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시장을 찾아 활기에 찬 치열한 삶을 보며, 내 자신을 다시 돌아다보고 미래를 준비하곤 했다.
식사를 얼추 마치고 식당을 이곳저곳 둘러본다. 대학시절을 돌아다보며, 그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에 잠겨본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던 그 시절, 전통시장 구석 허름한 중국집에서 친구와 맛있게 먹었던 그 자장면이 그리워진다.
그 친구 이름은 상과대학 회계학과 김선국.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용인에서 사업을 하며 지낸다는 소식이 전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서 연락이 오길 기대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방법이 없다. 친구 김선국과 함께 했던 자장면을 생각하다보니, 책에서나 읽을 듯 했던, 자장면 한 그릇의 행복이 아직 나에게는 행복이면서도 사치가 아닌가 싶다.
긴급회의로 인해 출근한 토요일, 하루 일과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