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담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다초점 렌즈를 장착한 안경이 없으면 글을 읽기도 쓰기도 어렵게 됐다. 그래서 수반된 것은 많은 고민이다. 특히, 이 아름다운 ‘세상을 얼마나 눈에 담아둘’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선두주자였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이 가져다주는 삶의 지수에서도 나는 가끔 후회와 아쉬움으로 뭉클할 때가 있다. 이런 나의 변화가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이 사소한 나의 질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사소한 일상이 ‘눈에 담기’다. ‘눈에 담기’는 간단하다. 원칙도 없다. 그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눈에 담아두는’ 것이다. 책도, 영화도, 직장생활도, 사진도, 미술도, 종교적 기도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아픔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기억하기 싫은 주변 상황과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을 ‘눈에 담는’ 것이다.
‘눈에 담기’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추억이 될 만한 것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를 ‘찰칵’이라는 추억의 앨범에 가득 채워보자.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삶의 궤적이 하나, 둘 쌓이면 ‘눈에 담기’ 나무는 커져만 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눈에 담는’ 것이다. 본질은 망각하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변형을 이룬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눈에 담아야만 긴 시간이 흘러도 생생하게 남는 ‘추억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눈에 담기’는 쉽지 않다.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투자를 반복하는 일이어서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나를 위해 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눈에 담기’는 스스로 ‘시간 낭비’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삶의 궤적에서 ‘자신’을 위해 그 어려운 ‘시간’을 투자할 줄 아는 강단이 필요하다.
게임이나 오락으로 보내는 시간을 대신하여,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하늘 한 번 올려다보기’, ‘싫어하는 장르의 소설 읽기’, ‘아이돌 콘서트에서 마음껏 리듬 타기’, ‘차마 눈뜨고 시청하기 어려운 UFC 게임 즐기기’, ‘좋아하는 프로야구 경기장 방문하여 응원하기’, ‘반항하는 사춘기 학생과 다리 떨어주기’ 등 찾지 않아도 넘쳐나는 ‘눈에 담기’에 익숙해지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생각은 죽은 것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적절한 시기가 될 수 있다. 눈에 담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 함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에서도 분명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떤 자리, 어떤 장소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하고, 우리를 위하는 것인지 진지한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