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쟁은 세계에서도 유명한 화젯거리며 해외 토픽난에 등장하기도 하고 어느 나라의 방송에서는 광고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국회에서 난투극을 배경으로 하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보통 정쟁이라고 하면 말로서 상황정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 국회는 말이 안 되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동하는 양심의 정치라고 감히 평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법이 일면 국회선진화법이라고 했는데 지난 패스트트랙에서 자유한국당의 몸으로 방해하는 법 위반이 있었지만, 당시에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은 슬그머니 언제 있었느냐는 식으로 논제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 검찰에서 수사에 의한 체증으로 법의 준엄함을 보여야 할 텐데 권력의 속성상 같은 부류로 전락하여 흐지부지하고 말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빌미로 국회에 등원하기를 거부하면서 황교안 대표의 대권 선거 운동에 버금가는 다양한 장외정치를 하고 보수언론들은 이를 특종으로 보도하면서 부추긴다. 그의 말실수가 이제 서서히 정치역량으로 드러나면서 일국의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닌 사람의 품격으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심지어 현 정부의 문재인 대통령을 독재정권이라고 하는데 몇십 년 전부터 권력의 언저리에서 눈독을 들였던 독재정권에서의 그의 역할을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말의 정쟁은 장외에서보다는 국회 내에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제 폭력 국회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몸싸움이 아닌 품위와 존경의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보고 싶은데 이제 잘 안되는 모양이다. 당리당략이 몸에 밴 그들의 행태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황 논리에 따라 정해진 위치안에 잘 적응하는 모범(?)의 국회의원 모습이 오늘의 정쟁이다.
사실상 삼권분립의 민주주의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교과서적인 정설이다. 하지만 절대 왕정이 무너지면서 상황은 다르게 된다. 중세의 절대 왕정은 여야가 없이 왕을 사이에 두고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권력을 분점하다가 왕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거나 분노를 사면 정책에 상관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위리안치되고 귀양을 갔다. 이후 임금의 분노가 풀리면 다시 도성으로 들어와 정치에 몸을 담았던 우리 사회의 봉건왕조였다.
당시의 조선 시대에도 왕권이 미약하여 신하가 정쟁을 주도하고 왕은 그저 재가만 하던 시절이 많았고 일부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왕들은 정쟁의 신하들이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으면 한쪽을 없애고 다른 쪽을 등용하는 등 하다가 다음 왕이 이어받으면 다시 현 집권세력이 몰살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던 시기가 있었다.
영조와 정조시대를 접어들면서 탕평책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무마하는 등 했지만 결국 신하들이 권력을 쥐고 적당하게 왕과 타협하면서 정적을 몰아내는 등 왕은 존재만 하지 신하들이 좌지우지하는 시대였다. 얼핏 보면 정도전이 꿈꾸었던 이상세계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국 그 이상세계 역시 다스리는 자들의 청빈함과 정직함이 신뢰의 상징이 될 때 실현되는 세계를 말함이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이제는 신뢰와 나눔의 상징은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봉건시대처럼 왕의 명령으로 죽고 사는 시대는 아니지만, 여전히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다스리는 자의 입신 영달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조직이 있는 사회다. 이미 양심은 등 뒤에 가려진 지 오래고 어떻게 하면 조직의 리더에게 잘 보여 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 자리에서 국민에게 군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는 사회다. 특히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의 거점에 앉아 있는 대부분 사람은 잘못된 사고로 인해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정의 상식에서 벗어나 지금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매우 가슴 아픈 현실인 것이다.
국회가 열리지 않는다. 거대 양당 중 자유한국당의 등원 거부에 여야 4당이 움직이는 태세이다. 새로운 검찰총장이 임명되기 위한 절차가 청문회를 거쳐야 하므로 자유한국당은 국회 등원의 매개변수로 삼기 위한 명분이 서 있음에도 일부 강경론자들은 백기 투항이니 하면서 스스로를 폄하한다.
우리나라의 정쟁은 이렇게 계속 희화돼야 하는가? 정치인들이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국민이 정치인들을 걱정하는 시대가 된 것은 그만큼 국민의 정치역량이 상승했고 정치인들이 하는 말과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정치인들이 국민 위에 군림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국회의 권력이 정부와는 다른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을 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제발 국회를 열어 민생현안을 살피는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들이 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까 마음을 졸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