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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보다 고백



최청미  <팽나무작은도서관 관장/전주서머나교회(기장) 담임목사>



요즘처럼 할 말이 많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모여 앉기만 하면 할 말이 많다. 그런데 그 말들의 대부분은 ‘남의 말’이다. 그리고 요즘은 우리 화제에 오를만한 ‘남들’이 유달리 많은 것 같은데 이 남들 중 첫 자리를 차지하는 부류가 바로 정치인들이다.


 특히 각당색별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은 ‘남의 말’의 대상이 되어 화제 중심에 서 있다. 나도, 주변의 사람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아무런 양심의 고통 없이 가책 없이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을 두고 입방아를 찧는다. 그리고 이 ‘남의 말’을 하면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걱정하고, 한편으로는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당신이라고 뭐 대단한가? 다 그렇고 그렇지. 당신도 어쩔 수 없지. 안 그래? 나랑 비슷하네.’ 뭐, 이런 식의 마음이랄까.


 그리고 ‘남의 말’을 하는 우리 마음이 착잡한 것은 그 말의 내용들이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개는 험담이고 비난이다.


 때론 좀 심한 욕이 배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과거, 그들의 실수, 그들의 부끄러운 일, 그들의 도덕적, 실정법적 죄들을 비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분들 중 일부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잘 생각도 못하고, 엄두도 못내는 일을 저지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못하는 일을 하니 특별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최근에는 정치인들만 입방아에 오르는 게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도 입방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래전에 우리나라 최대 교단 중 하나인 모 교단의 총회 석상에서 있었던 일이 주요 일간지에 모두 보도되었고, 어떤 신문은 사설까지 실었다.


 해당 교단총회에 용역이 동원되고, 가스총을 꺼내드는 상상도 못할 일도 있었다. 그간의 숨겨진 사정이나 내용은 우리가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고들 말한다. 이러다 보니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 교회지도자, 연예인..... 뭐 이런 저런 사람들이 ‘남의 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일들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 것은 알아야 하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도 그 책임을 느끼는 같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회피할 수 없다.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요즘 이런 분위기에 살면서 제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남의 말’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 자신은 어떤가?’ 하는 것이다. 예수는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꾸짖으셨다. 예수는 먼저 자기 눈의 들보부터 빼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시에 남의 눈의 티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유대나라 주류인 바리새인이었다. 이 바리새인들은 나름대로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따라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왜 나처럼 못하는가?’라고 책망했는데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하면서 율법의 가장 큰 내용인 사랑은 알지 못했다. 사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인데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그렇다. 이런 저런 사람을 대상으로 입방아를 찧는 이유는 우리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입방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입방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늘 남의 눈을 들여다보기보다 우리 눈을 들여다보길 원한다. 그래서 남의 말을 하기보다는 나의 말을 더 많이 하길 원한다.
 

 더불어 생각해 보면 다른 한편으로는 남의 말이 아니고 나의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남의 말을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한데 요즈음은 그렇지 않고 우선적으로 자신의 말이 최고 인 것 같다.


 이제 ‘고발’ 보다는 ‘고백’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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