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 행복한피아노음악학원장/플룻연주자>
국민학교에 다니던시절 먹거나 입는 것이 풍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만국기를 운동장 지붕가득 걸어놓고, 바퀴를 굴려가며 달리기 선 가루를 긋고, 작은 운동장에서 파란공 하얀공을 굴리던 운동회때. 흰색,청색의 머리띠를 두르고 반팔 반바지를 입고, 1등 선물을 몇 개 받을지 설레는 기분으로, 신나게 학교운동장을 뛰어다니던, 국민학교운동회 운동장엔, 팡팡 신나는 운동회음악이 울려퍼졌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운동회날 아침일찍 불과 200m거리에 있던 만국기 가득 걸린 국민학교에서 들려오던 신나는 음악에 기분이 들떠서 운동회에 빨리 가자고 엄마 아빠 할머니를 졸라댔었던 신나던 운동회날, 나를 설레게했던 가장 큰 원인이 팡팡울리던 음악이었던것을 그때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마냥 즐겁고 신났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렸을땐, 주위에서 들려주던 신나는 음악과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씩씩하고 부지런한 새마을운동노래와 함께 즐겁고 신나게 자라왔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볏짚더미위를 미끄럼타고, 보름밤엔 깡통에 못으로 구멍 뽕뽕 뚫어 솔방울을 넣어 오른손으로 빙빙돌리고, 눈쌓인 겨울에 무 배추 뽑아낸 넓은 하얀밭에 사각사각 첫발자국을 남기고, 뒤로 벌러덩 누워 사진도 찍고, 눈을 높이 쌓아 삼각형모양의 미끄럼도 타고, 비료푸대자루 질질끌고 앞산으로 올라가, 좁은 오르막길을 광을내며 미끄럼을 타며 스릴을 즐기고,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못박은 꼬챙이를 찍어가며 씽씽 썰매를 탔다.
챙 넓은 커다란 농부모자를써도 따가운 햇볕에, 모자그늘 안으로 몸을 둥그렇게 오므리며, 졸졸흐르는 또랑물 옆 언덕에 나있는 냄새 찐한 쑥들을 뜯고, 큼지막한 우렁을 주워 구워먹으며, 날씨가 풀려 막 돌아다니기 시작한 참새들을 잡은 오빠들을 졸라, 통통한 참새다리구이를 입이 새까맣게 되도록 뜯어먹으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하며 넓은 하늘에 둥둥 떠 다니던 구름을 바라보며, 잔디위에 누워 눈을 감고 낮잠을 잤고, 반짝반짝 엄청많은 별들이 떠있는 하늘에서는 많은 유성이 하루에도 수없이 떨어지는 것을, 점빵 나무문짝위에 누워서 소원도 빌고 떨어지는 별을 세어 보기도 했다.
별이 저렇게 많이 떨어지면, 나중에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던 내 어릴적 많은 추억들의 자락자락에, 내가 좋아하는 어떤 형태의 음악으로든 음악은 늘 그렇게 내 인생과 함께했던걸 알게됐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하얀카라를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려입고 검은가방을 들고 귀밑1cm 단발머리에 무릎아래로 내려오는 교복치마를 입던 80년대초반이었다.
당시 조용필오빠가 가수왕을 거듭 몇 번을 수상하고, 촌스런 이선희가 상큼한 목소리로 등장했고, 윤시내, 송골매, 박강정, 혜은이등의 노래가 라디오와 티비의 여러프로그램에서 자주 흘러나오고, 이문세의 잔잔한 음악에 젖어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가요와 팝송을 들려주던 12시에 정오의 희망가요, 2시에 두시에 데이트, 등의 라디오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쓰고 시간체크하고 한번 놓치면 상심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처럼 다시보기도 없고 인터넷으로 언제든 찾아 다시 볼수 없는 시절이었다.
우리 생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던 라디오 프로에 위안받으며, 저녁이면 ‘밤을잊은 그대에게’‘별이빛나는밤에’등의 라디오프로를 틀어놓고 접시에 촛불을 켜놓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짧은일기와 친구들에게 편지를 끄적이며 젊은시절의 나를 다독여주고 나를 이끌어주던 나의 음악이었다.
가요중에 슬프고 우울한 음악을 자주 즐겨듣고 노래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노래방문화가 들어오면서 슬프고 우울한 음악을 많이 알고있는 나를 발견하고, 밝고 행복한음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찾아보던 때가 떠오른다. 슬픈노래를 부르다가 괜히 신랑이나 함께한 사람들한테 미안해지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던 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