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복된 좋은 운수’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가 행복이다. 열심히 일상을 살아내는 이유 중 하나도 종착지에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시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4차혁명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일에 행복해하고, 원치 않는 어떤 일에 자존감이 무너지고, 새로운 행복을 꿈꾸는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가족을 위해 헌신한 50대 이상 나이의 ‘엄마’, 그녀에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배부른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 없는 외침’일 것이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산업화, 현대화로 먹고사는 문제는 고민이 아니다. 그런데도 ‘먹다가 죽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서울에 살다가 ‘아사(餓死-굶어 죽음)’한 가족 기사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처지를 바꾸어 생각함)’라고 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삶은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다 갈등과 고민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견해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심지어 자기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는 껄끄러운 사회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방학 중 연수에서 2시간 입장을 바꿔 모둠끼리 나누고 실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조는 ‘역지사지’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했다.
검은 안대를 하고 시각장애를 체험하기로 했다. 2인 1조로 체험은 진행되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긴장되었다. 모둠원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화장실을 가고’, ‘복도를 걷고’, ‘물을 마셔보는’ 등의 체험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말로만 듣던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 감사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매스컴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의 영웅들도 하루아침에 뚝딱 최고가 되는 것은 어렵다. 많은 ‘시간과 땀’이라는 노력이 함께 했다.
그 결과가 ‘연예 대상’ 혹은 ‘금메달’로 보상받는다. 그러나 그 영광의 순간은 정말 짧다. ‘최고’나 ‘우승’은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시점이다. 목표를 이루면 무엇하나 걱정할 것이 없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늘 계획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그것이 정답이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매일매일 글쓰기를 몰방하는 예비작가와의 경쟁에서 ‘이겨내기’는 버겁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뚝딱 출판되는 것이 아니다. 1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 그는 매주 짧은 시나 수필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피드백을 통해 글을 완성한다. 1년 52주 동안 매주 써 내려간 글이 곧 책이 되는 현실이다.
정답은 일상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재능이 있어도 그릇에 담아야 한다. 그릇에 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다. 일상의 무료함이 자칫 상대에 대한 모욕감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일상의 행동과 언어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벼락치기’ 공부를 해본 사람을 알고 있다. 일시적인 집중으로 저축된 기억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순간순간 일상에 최선을 다하자. 우리의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나아가 국민이 행복하다. 정답은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