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택
-전주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
-전주시음악협회 회장
음악은 사람의 감성을 지배한다. 서양의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알맞은 곡을 작곡하고 이를 연주할 때 시대의 상황을 소유한 집권자들이 불편했던 음악들도 있다. 비단 클래식음악뿐만 아니라 대중가요들도 집권세력들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금지곡으로 분류하여 더 이상 부르지 못하게 하는 가요들이 참 많았다.
유언비어인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나라 사랑의 상징적인 노래인 정광태의 ‘ 독도는 우리 땅’도 금지곡이었다. '독도는 우리 땅' 금지곡 논쟁과 관련하여 정광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노래가 1983년 7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사실상 방송금지곡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집권세력들이 자의적으로 시대 상황을 왜곡하고 또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김에 맞추어 음악이라는 창작물을 자신들의 소유물처럼 빗장을 걸기도 했다. 영화 ‘해어화’에서도 일제가 허가를 내주었다가 특정한 사람의 입김에 의해 불가로 입장이 바뀌면서 비극적인 생의 마감이 처절하게 전개된 영상이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다.
유럽의 핀란드는 소련의 침공으로 식민지가 되었다. 이때 조국 핀란드에 희망의 등불을 비추고 장엄하면서도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곡이 교향곡 ‘핀란디아’이다.
처음 주제부문부터 그 장엄함을 들으면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어지는 애국심의 발로가 시작되는 느낌을 준다. 결국, 소련당국은 이 교향곡을 금지곡으로 분류했고 결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핀란드는 이 교향곡이 국민의 호응을 받는 위대한 작곡가로서 불리게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 애국가는 사실상 제목이 없다. 그냥 애국가라는 통칭으로 불린다. The Star Spangled Banner는 성조기라는 뜻으로 미국국가의 제목이다. 영국은 'God, save our Queen'으로 ‘우리의 여왕을 구하소서’라는 뜻을 가진 영국 국가의 제목이다. 이 국가는 기독교 찬송가에서도 익숙하게 불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애국가는 음악사적인 위치에서 작곡가인 안익태의 친일행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코리아 환상곡의 일부에서 노래 부르는 부문을 따온 오늘의 애국가가 70여 년을 지낸 요즈음 일본과의 불편한 동거로 인해 친일을 청산해야 한다는 의미로 애국가의 존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더구나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오랫동안 동요로 불렸던 많은 곡이 친일행적이 밝혀진 작곡가들의 곡이라고 해서 이를 부정하거나 제외하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친일이라는 뜻을 부정할 수가 없기에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로 분류되면 사회적 인식에서 아주 저급하고 매국노 같은 인상을 줄 수밖에 없기에 친일행적의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 등이 이제는 재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영화 일정에서 배우 이정재가 총에 맞아 비틀거리면서 했던 대사 중 ‘ 몰랐으니까, 독립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을 몰랐으니까.’ 하면서 절규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일제 35년보다 2배나 많은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친일파 음악가들이 만든 노래는 그것이 동요든 가요든 아니면 교향곡이든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주류 음악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쉽게 과거를 잊어버리고 용서하고 화합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 있다고 하지만 이를 핑계로 일부 기회주의자들은 자신의 과거 행적을 감추고 더 교묘하게 날뛴다. 다시 돌아보는 음악세계에서도 이처럼 기회주의자들의 보신 음악이 아직도 주류를 이루면서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모두가 친일일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분개하기도 한다.
민족의 자주성 확보를 위해 몸을 바쳤던 핀란드의 시벨리우스는 못될지언정 민족의 주권을 버리고 젊은이들을 사지에 내모는 것과 친일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면서 그들을 위해 헌정곡을 작곡하면서 연주까지 했던 과거의 음악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반드시 이루어지고 이후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들의 음악에 대한 실존적 가치를 매겨야 할 것이다.
다시 돌아보는 음악세계는 단순한 우리 생활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감성의 매개체이기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음악인으로서 확실한 자기 정체성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