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정 선
-전주대학교 객원교수
-피아니스트
이전에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유래와 변천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피아노 음유시인인 쇼팽의 피아노연습곡을 소개하였다.
그럼, 우리나라의 피아노 전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일반적으로 피아노라는 악기가 너무 무겁고 또 미국 선교사들이 배에 싣고 오는 경비가 만만치 않아 구한말에서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 연주하는 것이 아닌 서양선교사들의 부인이나 주변 서양사람들이 연주하는 것이기에 우리나라 국악의 농악 등에 익숙해 있는 경우에는 참 신비로운 악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따라서 피아노보다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악기를 찾은 것이 바로 풍금이다. 피아노 형태의 틀만 갖추었지 피아노라고 부를 수는 없고 말 그대로 ‘풍금(風琴)’ 이었는데 바람 소리로 들려주는 거문고 소리라는 명칭이 되었다.
이 풍금이 사라진 것은 불과 몇십 년이 되지 않는다. 아마 최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피아노 대용으로 풍금을 사용했다. 영화에서 보면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동요 따라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추억의 일상을 그려준 악기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고 일부 학교의 창고에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 화려한 피아노 연주자들의 탄생은 언제였을까? 1910년 경복궁 석조전에서 고종황제 앞에서 연주했던 숭실학교 출신의 김영환이 한국사람중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제자 김원복(전 서울대교수)이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한국사람중에 피아노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배운 한국인들이 귀국하여 대학교수로 종사하면서 꿈나무피아노 재원들을 발굴하여 가르치면서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시대를 열게 하였다.
한국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끼는 세계가 부러워한다. 피아노만이 아닌 일반 음악에서는 이제는 K-POP라고 하여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대중음악이 이처럼 활개를 피기 전 우리 사회는 피아니스트들을 중심으로 위대한 음악연주가들을 세계의 정상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단순하게 피아노 하나만으로 국내의 열광적인 뉴스의 소재가 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의 표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피아노 본고장에서 활약하는 사람들보다 그 이상의 연주 활동을 통해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피아노 음악이 서양의 음악이 아닌 우리의 음악이 되었다. 전 국민이 즐겨 찾는 음악이 되었고 대중성을 확보한 음악이 되었으며 피아노가 들어가지 않은 문화예술공연이 없을 정도로 소중한 악기가 되었다.
다만 피아노 음악의 전문성을 위해 전문가 집단들이 연주하는 형식의 피아노곡이 있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듣고 연주할 수 있는 대중성 있는 피아노 음악이 구분되어 있어 이를 잘 조화롭게 꾸미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색한 피아노 연주곡을 듣는 청중의 괴로움은 서로에게 곤란할 뿐이다. 따라서 피아니스트들은 직업적인 사명감과 음악가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고 부단한 연습과 노력으로 주어진 환경을 이기고 나가는 피아노 음악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
요즈음은 도심권의 웬만한 동네에는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학원과 교습소 등이 널려 있다. 가르치는 사람들이 전문가가 되든 아니든 피아노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학습환경은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피아노라는 음악의 기본을 익히기 위하여 성장기의 어린이들에서부터 좀 더 확실한 피아노 음악에 대한 전문성을 토대로 교육해 성장기에서도 스스럼없이 한 곡조쯤은 악보 없이 연주해 볼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연주실력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피아노 음악의 세계!이제 피아노라는 악기가 더 이상 일반주택의 장식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피아노를 소유한 가정들은 피아노를 꺼내놓자. 그리고 추억의 옛일을 그리워하면서 간단한 연주를 해보자. 세상이 밝아지면서 우리의 생활이 좀 더 윤택하고 풍요로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피아노 음악의 감미로운 선율을 그리면서 오늘도 귀를 즐겁게 하는 일상으로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