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 로 -본지 논설위원/반태산작은도서관장>
우리는 일반적으로 몸이 아프다고 하면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아픔의 빈도는 정신적인 것이 더 크다고 하지만 어쨌든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몸이 아플 때는 부모님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몸이 아플 때 우리 부모님은 자녀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병원에 갔고 또 의사 말을 들을 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듣게 되면서 절망할 때가 있다.
이때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神)을 찾는 것이었다. 내가 믿는 종교가 있든 없든 신(神)이 존재한다면 나에게서 아픔을 사라지게 하고 ‘우리 자녀에게도 치유의 광선을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몸이 아프면 정신도 쇠약해진다. 그리고 걱정이 앞선다. 최종적으로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내가 죽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생각이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아픔이 치유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아플 당시의 생각을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영위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아플 때는 참 서러운 것이 많다. 병명이 특정됐을 때는 금기시하는 것들이 참 많고 특히 인간의 본능인 먹을거리에 대한 제약이 많아 아쉬울 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병명이 특정되지 않고 그냥 아플 때 가 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 했던가?
달려갈 길을 다하고 인생의 최종 목표를 향해 꿈을 이루려는 순간 현대인들은 만성피로에 시달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파간다. 젊었을 때는 신체적인 빈도가 최고점에 달하여 어지간한 피로가 와도 다음날 잠만 자면 말끔하게 사라지지만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피로의 증후군이 몸에 달려들게 되고 인간장기의 어느 순간이 결국이 고장이 나서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통증으로 올라올 때는 회한이 서럽게 느껴진다. ‘이제 먹고살 만했는데 병마와 시달리느라고 행복추구를 본의 아니게 떨쳐버리다니!’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참 많다.
몸이 아플 때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진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직책에 있었든지 아니면 돈이 많아 엄청난 부를 과시했든지 또는 명예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던 일들 또한 과거의 치부로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대하여 항상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100세 시대의 건강한 삶이라는 것은 현대인들의 삶이 긍정적이며 현대의학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조선 시대만 해도 개인의 차이는 있었지만, 회갑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야 회갑이라고 하면 젊은 회갑이라고 하여 아예 생각하지도 않을 때이지만 과거에는 소중한 육십갑자의 목적으로 잔치를 벌이곤 했다.
그만큼 장수한다는 의미이면서 축하의 의미로 되새겨지는 건강한 삶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특히 사무직 종사자들의 평균 수명은 매우 짧았고 왕들의 수명은 50세 미만이었던 것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었던 것을 보면 아픔을 느끼는 세대가 훨씬 빨랐을 것으로 본다.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라’라는 말이 있다. 현대인들은 의학의 발달과 건강생활로 인해 자신의 몸이 아프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한번 몸에 대한 아픔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건강에 대하여 매우 조심스러워서 하면서 건강생활에 최선을 다한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잠을 자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깨어나서야 생물학적 동물의 본능에서 인간의 지적능력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 된다. 그런데 몸이 아프면 이러한 만물의 영장에 관한 생각도 희박해진다.
이제, 아프면 생각나는 것이 아닌 건강할 때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수명을 다하기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한 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낙을 즐길 수 있도록 자신들의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