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근 <전, 동북초등학교 교장/아이나라협동조합 이사장>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경제적 부의 창출에 따른 돈이 많은 부자이건 아니면 조금은 불편하지라도 생활의 만족을 느끼는 정신적 감정의 표현이든 행복은 느끼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OECD 국가에서 행복 만족도를 조사해보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통계가 있다. 국민의 생활 양태나 정신의 가치를 분석하여 행복 만족도 최고를 나타내는 국가들은 히말라야산맥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독일이나 일본 그리고 최고의 자본주의를 구가하는 미국 등에서 느끼는 국민의 행복 만족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에서 최고의 자살률을 나타내면서 행복 만족도가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행복한 생활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상상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일상에 행복은커녕 불행의 씨앗이 잉태됐을 것이라는 추측하에 그만 자살을 택하는 불행의 연속성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최근까지도 인터넷에서 만나 펜션 등지에서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자살하고 또한 생활의 빈익빈에 못 이겨 자살하는 등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이 행복 만족에 대한 불신감으로 늘어나고 있다.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우리는 자극적인 것은 좋아하게 된다. 사건의 반전이나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시작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우리 생각을 지배하는 데에는 이러한 매체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민은 행복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선정할까? 일단은 경제적인 부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행복을 이루는 조건이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물론 돈이 많이 있으면 행복추구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법칙이다. 돈이 따라가는 곳에 행복이 있는 정설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돈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에 반론이 있다. 돈은 자신이 생활하는데 불편 없이 적당하게 있을 때만 해당이 되는 것이지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추구가 그 이하로 돈이 있는 사람보다는 더 나은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돈은 생활의 편익을 위해 필요한 조건일 뿐이지 행복을 가져다주는 근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행복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다. 행복의 우선순위를 적당한 돈과 적당한 건강 그리고 적당한 사람과의 관계설정이 형성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바로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의 일 순위가 아닐까 해 본다.
예부터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행복을 전제로 한다면 돈이 있으면 행복을 조금 얻는 것이요, 명예를 가지면 행복은 많이 가지는 것이요, 건강을 가지면 행복은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행복의 최고 조건은 건강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삶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TV 프로그램 중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한결같이 자연에 살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하는데 대부분 출연자는 건강문제로 인해 산속에 들어와 살고 있고 건강한 삶이 유지되면서 행복을 맞는 최고의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들 한다.
바로 행복한 삶을 위한 제언이 건강 유지라는 것이다. 인간은 조직사회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되며 일순간 행복을 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행복의 근원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소박한 꿈을 실현하는 작은 몸짓 하나로 행복을 추구하고 가족 간의 화평과 존경이 행복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오늘의 행복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행복의 열쇠를 내가 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행복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공동체 생활이든 사적인 생활이든 긍정적인 마음 밭에 서로를 아끼고 달래며 공동의 선(善)을 추구할 때 행복 전선은 이상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