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은 영 <늘사랑교회 목사/소통과공감 심리상담사>
사람의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은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살아가면서도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참 애쓴다. 그중에서도 산을 이야기할 때면 등반가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세계 유수한 산들의 봉우리를 정복했을 때의 감격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산유곡의 산을 등반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들도 부지기수일뿐더러 최근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기 위해 떠났다가 실종되었던 사람 중에 기후변화로 눈이 녹자 발견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산사람 중 돌아오지 않았던 당시 등반대원을 발견하여 장례를 치렀던 것이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왜 사람들은 고봉을 등반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면서 오르려고 할까? 아마 그것은 성취감일 것이다. 높은 산에 올라 누구도 밟기 어려운 땅에서 자신만의 고통을 이겨낸 값진 승리의 보람이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3000미터 이상은 고산병이 시작하는 한계선이라고들 하는데 이러한 악천고투후에 맛보는 성취감은 인생의 짧은 여정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젖줄일 것이다. 더불어 자신만의 영광이 아닌 지역사회의 영광이요 나아가서는 나라의 민족의 찬사를 받는 영광의 대열에 산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2000미터 고봉의 높은 봉우리가 아니더라도 지역사회 주변에 있는 불과 400미터 이내의 낮은 봉우리에 올라서더라도 성취감을 느끼며 환호성을 지른다. 산 아래의 광경이 눈앞에 들어오면서 힘들게 올라왔던 여정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최고의 성취감을 만끽하게 되어 권력과 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른 사람들은 한 몸이 되어 서로의 정서를 교환한다.
산 위에 올라섰을 때 산 아래로 보이는 광경은 참 다양하다. 도시 근교의 산에 올랐을 때는 도심의 모습이 한 손에 잡힐 듯하면서 세상 근원의 모든 것이 태초로 돌아가는 듯하다. 여기에는 다툼도 없고 미움도 없으며 부와 빈의 차이도 없고 권력의 높낮이도 없는 인간 태초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오직 서로를 의지하면서 배려와 나눔이 있어 처음 보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쌓이게 될 뿐이다.
심산유곡에서의 산 정상은 도시 근교의 봉우리 정상과는 느낌이 다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비슷한 지형의 산과 계곡이 주류를 이루고 돌아오는 소리는 메아리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람은 고요 속에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세상살이의 세태와 변화에 시달리면서도 산에 올라 마음의 평정심을 갖는 것이 바로 산 사람들의 정서이리라. 요즘 잘나가는 종편에서의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대부분 산과 연계되어 있다. 간혹 무인도의 산이나 바닷가도 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대부분 산에서 한 이야기이다.
산 위에 올라서 보면 만물의 군상들이 발아래 펼쳐진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인간군상들이 무엇을 차지하기 위해 그렇게 다투고 싸우면서 힐난하고 비난하는지 참 가소로워진다. 산 아래에서 그렇게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언사를 부리는 등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산 위로 올라와 보라고 하고 싶다.
특히 요즈음 같은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이 점철된 현실에서는 더욱이 권하고 싶다. 산 아래 있는 군상들의 모습이 참 안타깝고 슬퍼지게 되어 제발 모든 시름을 잊고 산 위로 올라오라고 권하고 싶다.
산 아래의 조밀한 모습을 보면서 마치 걸리버의 거인처럼 작게 보이는 모든 것들의 아귀다툼이 다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결국, 마음을 가다듬고 경쟁 사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한 번쯤은 쉬어가면서 자신을 다스리는 방편으로 산에 오르길 권한다.
사람이 모이면서 군락을 이루고 마을 단위를 벗어나 조직사회에 접어들고 국가를 형성하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과 다툼이 있었다. 지금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철천지원수처럼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산에 올라보라. 철천지 원수가 바로 내 이웃이며 다툼의 상대방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산에 올라 산 아래를 보면서 마음의 평정심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