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천 <군산 이곡교회 담임목사>
최근 종교,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개신교 단체가 집단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면서 이슈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것도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국가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 대하여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집단을 동원한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의사표시가 단체의 이익을 위한 각종 사회단체라든지 여기에 종교를 표방하는 단체이든지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신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해가 된다. 예전에 종교를 탄압하던 전제군주에 맞서서 말과 행동으로 응징하던 중세시대의 역사가 바로 이를 증명해 준다.
종교가 제정일치에서 분리되면서 신의 영역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래도 각자의 역할을 분리하여 왕이나 사제들의 일을 나뉘었던 성서 시대를 보면 다 이유가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황이라는 신정정치가 세속정치와 결부되면서 영지를 가진 영주들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신이 본래 추구했던 선이 아닌 악의 축으로서 문제가 많아지면서 결국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파생적으로 개신교라는 프로테스탄트가 탄생하면서 오늘날 세계 각지에 개신교회가 생겨났다.
이후 제정 분리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오히려 기독교 보다는 모슬렘에서 초기 이슬람 시대의 근본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더 많아지면서 중동 사회는 양면성을 띠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500여 년을 유학적인 관습에 의해 유교라는 이념으로 국가 사상을 주축으로 하여 지내오다가 근대에 기독교가 받아들여지면서 기독교의 평등사상과 자유주의에 따라 종교인구가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기독교의 발전모델로 등극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사이에 우리 사회의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폄하되기 시작하고 목사라는 명칭이 먹사라고 하는 등 최악의 조롱을 받게 되었다. 대부분의 교회와 목사들의 성실하고 믿음적인 종교 행위는 감춰지고 소위 잘나간다고 하는 일부 이름있는 목사들의 잘못된 행태로 인해 이러한 일부 조롱이 전체의 조롱으로 비화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게 되었다.
종교는 올바른 이성을 가진 집단으로 선을 추구한다. 유일신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내세에 대한 구원의 목표이기에 현세에서의 삶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어떤 불가의 스님이 이야기했다고 하던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좋다고! 저승은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현세에서의 삶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곳에 심심치 않게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데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는 이상한 행태의 이성을 가진 기독교단체가 특정한 목사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 오르고 있다.
기독교단체라고 해서 사회의 불의나 민주질서에 반하는 시국을 보고 그냥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이나 종교적 이기주의에 의한 집단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자신들의 합리적인 주장일지라도 전체를 바라보는 국민이나 같은 종교를 가진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염려스럽고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최근 광화문에서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는 명칭의 단체가 집회를 주도하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타났다. 예전에는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 나타나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기독교가 한반도에서 탄생된 종교가 아닌 외래종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독교의 세계화에 대한 선교지로서 한반도에 전래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우리는 기독교를 우리 사회의 종교로 토착화시키는 데 성공했으므로 수많은 대형교회가 탄생되었고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십자가의 종탑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를 빌미 삼아 일부 기독교단체와 그 대표자들이 하는 것을 보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염려스러운 것들이 많다. 일부 집단의 사람들은 기독교단체 사람이지 아닌지 모르지만, 청와대 부근에서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했었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독교는 올바른 이성을 가진 종교이다. 성직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따르는 신도들 역시 냉철한 판단과 자기 주관의 뚜렷한 인식으로 선동적인 것에 순종이라는 명목으로 따르지 말고 그것은 순종이 아닌 맹종이나 복종일 수밖에 없으니 차제에 건전한 신앙의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들로 다시 생각하면서 예전에 불의와 투쟁하던 올바른 이성을 되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