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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서 성숙으로



최 청 미  <팽나무작은도서관 관장/전주서머나교회(기장) 담임목사>





성장과 성숙은 종교의 의미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들 중의 하나이다. 기독교인들은 성장과 성숙을 병행한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풍기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성장은 어린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여 미숙하던 사람이 원숙한 사람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사람이 많은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존재하던 사람이 스스로 삶을 해결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하면 많은 것을 얻는다. 돈도 많이 벌고 안정된 신분도 획득한다. 점차 명성도 얻고 세상을 발아래 내려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업적도 많이 쌓이고 사람들의 칭찬도 점차 많아진다. 이게 성장이다. 사람들은 "많이 컸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창 성장기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 때문이다. 그 실수란 자신의 연약함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자신이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고 그래서 호언하길 좋아한다. 남들에게 "그것도 못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긍정적 사고방식에 대해 말하길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를 직업적으로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약간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죽는 그 날까지 달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곤 하는데 이런 사람을 보고 있으면 성장하긴 했으나 아직 성숙되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서에서 본 바울의 모습은 성장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얻었다 함도 아니라’ 라고 말하면서 부름의 상을 위해 푯대를 바라보면서 달려간다고 고백할 때의 그의 모습은 성장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는 마음을 비웠고 모두 내려놓았다. 그는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말한다.


성장과 성숙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성장은 '얻음'을 목표로 하고 성숙은 '비움'을 목표로 삼는다. 성장하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목표를 세워 나가지만 성숙해 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내려놓기를 즐긴다.


성장은 능력의 땀 냄새가 느껴지고 성숙에서는 겸손의 향기가 풍긴다. 성장이 30-40대의 모습이라면 성숙은 60-70대의 모습이다. 성장이 푸르디 푸른 검어 보이기까지 하는 여름 숲과 같다면 성숙은 찬란한 마지막 빛을 세상에 발산하면서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단풍잎과 같다. 그는 곧 자신이 낙엽이 될 것을 알고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날을 고요히 기다린다.


정호승 님의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란 시는 성숙의 구수한 냄새를 잘 나타낸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많이 성장했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자칫 천박한 성공주의자로 비춰질 염려가 있어 이제는 비움과 내려놓음의 극치를 바라볼 때이다. 성장에서 성숙으로 우리의 영적 목표를 조정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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