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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있는 인생



홍 성 근  <전, 동북초등학교 교장/아이나라협동조합 이사장>



인사유명 호사유피(人死留名 虎死留皮)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후에 남기고 싶은 것이 있고 남긴다는 것도 유익하고 착하며 뜻한 바를 남긴다는 것이다. 악인으로 유명하게 생을 마감했을 때에는 이러한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악한 사람일 뿐이다
인생 백세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 물론 건강하게 노년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서 백세시대의 인생을 즐거움으로 지내는 것이 바로 현대인들의 희망 사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 사항을 가진 것은 이론적인 예상일 뿐, 대부분 평균과 기대수명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인생의 굴곡진 삶을 깨닫게 된다. 더구나 평균 이하의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 있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에는 인생 백세시대의 요원이 아닌 그저 삶을 영위하는 한 세대의 구성원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고대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은 행복한 생활을 바라는 염원이 있었다. 그저 혼인해서 아들, 딸 잘 낳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와서야 신분의 제약에서 벗어났지 예전에는 신분의 틀 안에 꽉 막혀 있어 기대수명 내에서라도 행복의 가치가 있는 보람된 생활은 전혀 관계가 없는 일상의 험한 세상살이였다.


신분의 차이가 만들어준 세상살이는 타고난 부모덕에 인생의 잘난 맛을 보고 음서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일반사회 구성원들의 윗자리를 차지하면서 스스로 보람된 인생의 정점을 찍곤 하였다.


근대는 차지하더라도 현대인의 삶을 유추해보자. 우리는 보람되고 행복한 인생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자유가 수반되는 사회이지만 자신의 역할에 따라 생활의 경제여건이 따르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사유재산이 보장되면서 한편으로는 극심한 경제적 빈곤층에 대해서는 공적 부조라고 해서 이를 구휼하는 약간의 사회보장제도만 만들어져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보람되고 행복한 인생을 설계하면서 생의 만족을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편차가 있어 보람 있는 인생을 평가하는 것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부류의 집단을 제외하고 일상적이고 평범하면서 기본적인 경제가치를 가진 사람들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들에게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았느냐고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무척 궁금할 따름이다.


현대의 신분 차이는 없어졌으나 내재적인 경제가치에 의한 차이가 아닌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제의 가치에 의한 부의 창출에 압도적인 사람과 그 집단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집단보다 상당한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좀 차별의 뒤안길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생을 보람있게 살았느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뻔하다. 같은 시대에 살았고 이에 따라 신분의 차별이 없다고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은 이렇게 권력과 경제의 가변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보람된 인생을 살았노라고 회상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사회가 조금씩 달라지길 시작한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영어의 몸이 되고 부자들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고 패가망신하는 등 달라진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또한, 차별에 따른 특권의식의 부류들이 차츰 평등화된 국민 여론에 의해 단죄당하거나 시간상으로 몇 개월이나 몇 년이 되지 않아 정보가 공개되면서 스스로 참칭하여 보람있게 살았다는 부류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통상적으로 이들의 상위층 삶이 보람 있는 인생이라고 자부했다가 도리어 암담하고 참혹한 삶이 되는 손가락질 받는 인생이 되어 불행의 인생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현대의 문명화된 세계에서 인생의 삶은 보람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각자 나름대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모습에 따라 보람의 가치가 결정되리라 본다. 정말 자신을 위한 삶에도 소홀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떠한 형태로든지 봉사와 사랑의 실천을 가질 때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았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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