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필 <㈜엄지식품 연구주임>
사람의 본능적인 속성에서 생물학적 의미로 먹는 것은 본능의 가장 근본적이다. 동물적인 본능의 여러 가지 행위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여기에 인류학적인 면에서 생각하는 지능을 가지고 말을 할 수 있으며 도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 대한 자평이다.
그런데 고대시대로부터 먹는 것에 대한 것, 즉 식량이라는 의미의 인류생존에 필요한 가장 원초적인 것들은 현대 시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원초적인 삶의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몸의 본능은 바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며 특히 집단을 이루는 인류가 자신들의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았던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하거나 아니면 물물교환 형식으로 먹을거리를 찾았다.
신분의 차이가 나타나면서 먹는 것 또한 차별적인 면이 강했고 아무래도 왕이나 귀족들의 지배층들은 그만큼 먹을 것에 대한 풍족한 의미의 배부름이 있었다. 하지만 중하위층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먹을 것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다. 멀리 잡지 않고 불과 몇백 년 전의 조선 시대만 보더라도 가뭄에 의한 흉작이 발생하면 수많은 백성이 굶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얼핏, 현대사회에서 굶는다는 것이 절대 이해가 되지 않을 부문도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식량이 부족한 고대와 중세시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의 식량부족이 있었다. 근래에 들어와서 북한지역에서도 굶주림의 실태가 보도되어 충격을 주었던 고난의 행군이 있었던 것은 다분히 먹을거리의 부족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만 조선 시대의 궁궐에서도 왕의 수라를 생각해보면 당시 수라간에서 밥을 지었던 나인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왕이 남긴 음식이었다. 어떤 왕처럼 수라를 깨끗이 비웠을 때의 식사에서는 나인들이 굶을 수밖에 없었고 왕이 남긴 음식을 기대해 보려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참으로 서글프게 느껴진다.
일전에 왕이 된 남자에서의 영화를 보면 당시 광해군으로 되었던 가짜 임금이 왕의 행세를 하면서 임금의 수라에 대한 것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먹을거리가 간절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대장금에서 수라간 나인들이 행하였던 임금이나 왕족 그리고 양반들을 위한 음식 만들기가 화려한 궁중음식 일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말 청렴하면서 욕심을 부릴 줄 몰랐던 사람들의 가정사에서 밥상은 그야말로 꽁보리밥과 김치와 간장 한종지였다.
하물며 서민들의 밥상은 어떠했을까?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본능의 먹거리라는 수사에 의의를 달 것이 없었다. 양반집의 잔치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가져온 음식은 그들의 가정에서 진귀한 음식이요 생전 처음 맛보는 소중한 잔치 음식이었을 것이다.
한쪽서는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를 찾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잔에 비유되는 먹을거리로 부와 권세를 과시하면서 먹을 것이 생존의 도구가 아닌 생활 속의 일 부문으로 생각했던 것이 당시의 시대 상황이다.
요즈음 우리나라가 OECD 국가로 발돋움하고 또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생존본능이 거의 사라진 듯하다. 도시에서는 집 주변에 언제나 상설로 된 각종 편의점이나 가게들이 늘 먹을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먹거리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저렴한 가격으로 언제나 먹을 수 있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역사 속에 지금처럼 풍요한 먹을거리가 있었던가? 이제는 생존본능의 먹을거리가 아닌 생활을 위해 즐기는 형태의 먹을거리가 되어 자연스럽게 생존본능이 아닌 친숙한 사람과의 관계를 이웃 도구가 되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일상적이나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이라도 식사를 하면서 만나는 것이 생존본능이 아닌 사업파트너의 부속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먹을거리가 사업을 위한 수단으로 되어 양이 아닌 질로서 승부하는 고급스러운 먹을 것이 주변에 넘쳐나고 있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이고 거의 전쟁이라든지 자연재해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적어도 한반도에서의 위기상황이 있을지라도 우리 사회의 생존본능에 의한 먹거리가 위기의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생존에서 그만큼 멀어진 것이다.
위기의 순간이 잠시 보도되면 단 몇 시간 동안 생존본능의 비상식량 등을 준비할 뿐이지 일상에서의 느긋함은 이제 생존본능의 먹을거리가 아닌 더불어 즐기는 먹을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절대 필요한 것은 먹을거리의 안전이다. 정말 먹을거리로 장난을 치는 불량업자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더 깊은 생존의 법칙을 위해 잠시나마 먹을거리에 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