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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혜안(慧眼)이 보인다





   김 은 영

 < 늘사랑교회 목사/ 소통과공감 심리상담사 >


혜안(慧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 이란 해설이 나온다. 인생에서 이처럼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예전에 투시가라든지 예언자라든지 하는 주술사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문명의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대부분 사람이 신분이나 귀천을 막론하고 뭐라도 잡고 싶을 때는 주술가를 찾았다. 신내림을 받은 주술가들이 영적인 치료와 함께 신체적인 치료까지도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권력자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계층이 되곤 했다.


이러한 주술가들이 사실은 우리와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지만 그들만의 혜안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는 점집이나 무당집을 찾아가면서 미래의 앞날에 대한 혜안을 요구하는 사림들이 있음을 본다.


한때 신문 광고에 즐비하게 점집 광고가 나열되었었는데 다 이러한 사실에 바탕을 둔 혜안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찾아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들의 미래에 대한 앞날의 혜안을 묻고는 두툼한 복채를 건네곤 했다.


요즈음은 과학적 사고와 또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인공지능의 개발로 이런 사실들에 대한 것들이 점차 효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무튼, 혜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사물을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혜안을 이제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고민해 본다. 사실은 살면서 경험 때문에 찾아볼 수 있는 혜안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다양성의 시대에 자신만이 가지는 아주 특별한 재주가 있으면 우리는 이러한 재주를 통해 혜안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살면서 느낄 수 있는 혜안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주 지극히 평범하지만, 보통의 사람들도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부인하면서 관계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단편적인 생각으로만 자기 생각이 모든 사물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혜안은커녕 목불인견(目不忍見)으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나 꼴불견’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60세를 넘기면 경험 생활로 혜안을 가지게 된다. 경제적인 부유나 지식의 밑천이 없을지라도 생활 속에서 경험을 토대로 하는 혜안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사회를 긍정적이고 평화스러운 시대의 흐름으로 이어가게 한다.


하지만 혜안을 가지지 못하는 인생 60세가 넘어서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과 안타까움을 나타내게 한다. 아직도 철부지처럼 이해가 부족하고 자신만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일상의 사회현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어 불행의 삭을 틔우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일상의 삶에서는 평범하지만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닥치게 되면 진가를 발휘하는 혜안이 눈앞에 떠오른다. 지혜의 눈이 두뇌의 생각을 움직이게 하여 적절한 대처를 하게 한다. 바로 슬기로운 생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범죄를 해결하는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혜안을 범죄를 해결하는 프로파일러로 진가를 발휘한다. 프로파일러는 증거가 불충분한 강력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심층 수사를 위해 투입되는 범죄심리분석관으로 일반 수사기법으로 해결이 어려운 범죄를 데이터 마이닝과 패턴 분석을 통해 단서를 찾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설이다.


결국, 이러한 것들도 혜안이라는 단어가 뒷받침되면서 더욱더 긍정적인 결과를 유추해 낼 수 있게 된다.
 

살다 보면 혜안이 보인다. 아무리 힘든 세상과 어려운 일상이지만 혜안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혜안이 생기는 것이 아니요, 부유한 생활을 한다고 해서 생기는 혜안이 아니다.


오직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 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아를 省察하면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했던 성인처럼 세상을 바로 아는 지혜가 필요한 사람만이 혜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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