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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풍경 3



  황 인 상

< 이태리 페루지아 Orchestra Giovanile SR2 지휘자/ Coro S.Spirito Volumnia 지휘자 >
 
"설레임"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많이 이 설레임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오늘 아침은 아픈 친구가 보고 싶어 연락도 없이 찾아갔다. 마침 난 핸드폰도 집에 놔두고 나왔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다 서너 번 더 누르고 응답이 없어 잠깐 밖에 나갔나 하고 차 속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설레던지 핸드폰을 가지고 왔더라면 바로 전화해서 '너 어디야?'라고 따질 텐데 그럴 수 없어 무작정 한 삼사십 분을 기다렸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무작정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올까 언제 올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지켜보았다. 같은 색깔의 자동차가 지나가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같은 차종에 같은 색깔이면 너무 반가워서 혹시나 아닐까 하는 설레임과 희망이 맞부딪쳤다.


그러다 핸들에 얼굴을 기대고 지나가는 차들을 지켜보기를 한동안, 하얀 차 한 대가 내 옆에 주차했다. 나의 몸과 얼굴과 눈은 한곳을 응시한 체 미동이 없는 걸을 보고 옆 차 운전자가 내 앞으로 다가섰다. 날 살핀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그래서 내가 몸을 일으켜 차창을 내리고 인사를 하니 그가 말한다. 혹시나 응급차를 불러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살핀 거라고.


고마웠다.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이고 결국은 그 친구를 못 만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 시간 정도 같이 있어 주고 아침도 같이 먹고 그러려고 했는데 하지만 가슴 설레이는 그 순간이 좋았다.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핸드폰만 열면 맘만 먹으면 어디에 있는 것쯤은 알아내는 시대 모든 게 감시 카메라에 걸려 사는 세상이다. 사생활 침범이란 단어 보호라는 명목으로 어쩌면 더 감시를 받고 목을 조르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가끔은 핸드폰을 놔두고 밖에 나가는 즐거움도 가져볼 만하다.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한다면 말이다.


한가지 예를 들고 글을 마칠까 한다. 어떤 암 말기 환자 둘이 있었다. 한 환자는 말기 진단을 받고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 자락으로 집을 짓고 들어가 살았다. 다른 환자도 생활을 정리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다.


첫 번째 환자는 모든 통신망을 끊고 들어갔고 두 번째 환자는 핸드폰이며 회사 서류며 일거리를 들고 들어갔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첫 번째 환자는 음식도 공장 제품은 입에도 안 댔고 자가생산하여 먹거리를 만들고 산속에서 모든 먹거리를 구하며 살았으며 티브이나 핸드폰도 없이 부인과 단둘이 살았다. 그 후 3년 뒤 그는 암 완쾌 판정을 받았고 두 번째 환자는 죽게 되었다는 실화를 다큐멘터리에서 본적이 있다.


편리함 뒤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요즘 세상은 그게 건강으로 지불 하는 것 같다. 물론 의학이 발달하여 장수하는 세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너무 핸드폰에 목매달아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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