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근
<전, 동북초등학교 교장/ 아이나라협동조합 이사장>
예전에 종교적인 입장에서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눈을 뜨고 보면 10명 내외의 신도가 눈앞에 보이지만 눈을 감고 보면 10만 명이 보인다는 말을 했다. 지금의 현실이 미래의 가능성을 마음으로 읽는 변화의 강도를 적절하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물을 보는 눈은 개인의 편차에 따라 다양하게 보인다. 또한, 보는 각도에 따라 사물의 형식이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비친다. 사진작가들은 사물의 구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가장 역동적이거나 미적 감각이 있는 공간에서 촬영 각도를 찾아 사진으로 보는 것이기에 일반 사람들 역시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눈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을 상상 이상의 나래를 펴면서 움직일 수 있다. 결국,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꿈의 일환으로 다른 세계를 현실 세계로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비친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어있다고 한다. 소위 보수와 진보라고 하면서 같은 현상에 대하여 정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보는 것이 같을진대 어찌 이렇게 다른 소리를 할 수 있는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보면 고개가 갸우뚱한다.
예전에 중도통합론이라고 주장했던 어느 정치인은 그 말 한마디로 사꾸라로 전락하여 정치무대에서 퇴출당하였다. 보수와 진보 등의 어느 한쪽에 서지 않고 이를 아우르면서 통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바로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 국민과의 토론회’를 실시했는데 같은 현상을 보고 지지하는 쪽과 지지하지 않는 쪽의 반응은 정반대이다. 얼핏 보면 무조건씩의 지지와 반대가 횡행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하게 현실감 있게 보이면서 자신의 행동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보는 눈은 자신의 양심과 속 깊은 마음의 정도가 보인다. 또한, 바라는 기대감 등이 점철되어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그것보다 훨씬 더 기대감이 앞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눈으로 보이는 현실은 아직도 먼 미래의 마음의 눈이 되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현실의 눈이 마음의 눈이 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마음의 눈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이 더 좋을 것인가는 명약관화한 이야기이지만 어떤 때에는 차라리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사물의 현상들이 있다. 육신의 눈으로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 그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거짓의 눈을 가지고 애써 외면하는 일부 사람들과 마음의 정제된 눈을 육신의 눈으로 가져다가 말하고 행하는 이들은 다른 부류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라. 진실의 눈이 육신의 눈으로 비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그냥 일반적인 눈으로 보는 사물들에 대하여 자기 자신만의 생각으로 왜곡하고 자신만이 가지는 각도에서 본 수많은 사물에 관한 생각을 이르는 말이다.
마음의 눈은 평정심을 갖는다. 눈을 감으면 고요한 밤의 세계가 마음의 눈으로 펼쳐진다. 마음의 눈은 이렇게 자신만의 진리와 양심으로 사물을 계획하고 실천하게 된다. 그 마음의 눈에는 거짓이 없고 오직 한마음의 진실만 있을 뿐이다.
요즈음 육신의 눈으로 겉의 사물만을 보고 왜곡하면서 오직 자신만이 최고인 것처럼 주장하는 눈들이 있다. 제발 마음의 절제된 눈으로 사물을 똑바로 보면서 공동체를 통한 화합과 화평을 주장하고 싶다.
이제 한 달여 정도만 지나면 금년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기게 된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합일되어 우리 사회에 선한 양심의 공통분모가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