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근
<전, 동북초등학교 교장/ 아이나라협동조합 이사장>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한 것 중에 대부분은 생명체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목숨이 붙어 있는 생명체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형상화된 물질이 있지만 진화하는 물질에 따라 이것도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부문이 된다.
생명체를 창조하는 것 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이다. 만물의 영장이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다. 우리는 일상의 생명체가 사람 이외의 것이 많이 있지만, 이 생명체는 즐기거나 아니면 식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생명체 중에서 사람을 제외하고는 동물과 식물로 나뉜다. 대부분 움직일 수 있는 동물적 관점의 생명체와 움직이지는 않지만, 한자리에서 자신의 영역 안에 종족 번식 등으로 함께 하는 식물체로 나뉘게 된다.
대부분 약육강식 때문에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있거나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일반적인 생물학적으로 보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일반적인 순리가 대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물의 먹잇감이 되는 경우도 많다.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약육강식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약한 생물들은 강한 생물의 피라미드가 되어 자연의 순환적 질서에 따라 생을 마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조물주는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삶과 죽음이 선택되지 않고 생물학적인 자연의 현상에 의해 초자연적인 순환적 구조가 있게 하여 그들의 범위 안에서 삶과 죽음을 선택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바로 강한 생물들이 약한 생물들을 지배하면서 그 생물의 삶과 죽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사람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종족 번식이나 생활이 다른 동물보다도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수많은 생존의 혜택이 주어졌고 우리는 이러한 생존의 혜택이 결국 문명이라는 글자로 표현하면서 역사의 한 장을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가지는 동물적인 특권은 엄청난 조물주의 혜택이요 신의 영역에서만 내릴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된다. 이러한 사람의 가치가 현대에 들어오면서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존중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진화하였다.
역사적으로 부족국가 시대로부터 인간이 신분사회화 되면서 계층이 분리되고 같은 사람이지만 피부 색깔과 출신성분에 따라 서로 다른 취급을 받게 되었다. 결국, 살아있지만 죽었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최근의 현대사회 이전까지 엄연히 존재한 사실이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한반도의 역사 또한 다른 땅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이 땅의 민초들은 형식적으로 1896년에 신분 차별이 철폐되면서 평등사회 구현의 첫발을 디디게 되었지만 내용적으로 바뀐 것이 별로 없었다.
불과 약 120여 년 전의 행위가 있었고 이후 내용으로 확실하게 평등사회가 구현되어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제구실하게 된 그것은 불과 몇십 년이 지나지 않았다. 살아있으면서 살아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우리 사회가 도래된 것이 별로 오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시간적 배경이 된다. 사람들은 잠을 자게 되면 본능에 의한 생물학적 생의 일단만을 겪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아침에 깨어나면서 자신이 오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영혼의 마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죽음의 속성이 된다. 깨닫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면 영원한 꿈나라로 가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살아있는 것이 고마운 현실이 된다. 누군가가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라고 했다.
오늘도 살아있음에 행복한 시선을 두고 마음의 편안을 얻고자 한다. 죽음이 다가오는 평생의 시간을 생각하면 죽음 자체보다도 더 무서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마음의 짐을 벗고 갈등과 번뇌를 버리고 오직 살아있음에 신에게 감사하면서 오늘도 일하러 밖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