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믿음으로 찾는 세상 이야기





김 은 영
<늘사랑교회 목사/ 소통과공감 심리상담사>
 


믿음 하면 종교적인 행위가 떠 오른다. 하지만 꼭 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를 떠난 일상의 모든 현실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믿음에 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불신이다. 믿고 사라는 상술에서부터 막상 믿고 샀더니 엉터리라서 실망하여 절대 믿지 않는다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성서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다. 바로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일상은 실상이 되는 현실이다. 바로 가장 바람직한 생활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이 이처럼 가장 좋은 의미로 서로 믿고 살면 아름다운 생애의 시작과 끝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녹녹하지 않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정말 믿음으로 모든 일상을 보고 싶어도 꼭 남을 속이면서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믿음으로 거의 모든 것을 다 주었고 보여주었음에도 이를 속이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믿음은 곧 신념으로도 연계가 된다. 믿음이 신념으로 확신할 때에는 어떤 생각이 자신에게 다가와도 그것은 옳은 믿음인지 아니면 좋지 않은 믿음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무리 현실을 증명해도 확고한 신념으로 인해 달라지지 않는다.


한번 믿음으로 정립이 되어 신념화되면 사상과 이념도 이렇게 뿌리박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그와 같은 믿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누구에게 믿음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예전에 TV 드라마에서 여명의 눈동자가 있었는데 여기에 각각 남북한의 좌우익으로 변신한 두 배우가 가진 신념이 이를 잘 말해준다. 박상원은 남쪽에 진주한 미국의 도움을 받았고 최재성은 소련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결국 믿음으로 연계된 신념은 바로 사상과 이념을 토착화하는데 기여했다.


이처럼 신념을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이를 가슴속에 품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종교적인 맥락의 믿음은 신념 이상의 집념을 보인다. 자신이 속해 있는 종교의 울타리 안은 물론이고 같은 종교라고 하는 곳에서도 이단으로 지목된 그들의 신념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서 누가 이단이고 정통인지는 가리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신념 속에 가려진 서로의 사상과 이념은 지금도 대화보다는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다. 이렇게 종교적인 상황의 믿음은 더욱더 그 존재를 보여준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믿음의 존재를 가장 가치 있는 기준으로 여길 때가 있다. 나 자신이 믿는 믿음이 신앙이나 종교 행위를 벗어난 일상의 모든 사물이나 사안에 대하여 꼭 믿고 싶고 그 믿음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현대인들의 가치 있는 믿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믿음의 철칙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아픔도 비일비재하다. 꼭 의결되리라고 믿었던 국회의 의결이나 세월호참사 조사위원회에서 밝혀지리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관련 일들이 아직도 믿음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믿음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정말 꼭 믿고 그 믿음대로 될 줄 알았는데 일순간에 믿음의 순간이 허공으로 날아갈 때의 심정은 이제 믿음으로 해결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모든 현상에 대하여 의심하면서 절대 믿지 않는 것이 일상화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아직도 믿음으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소수의 사람이 믿음의 원칙을 가지고 사회를 지켜나간다고 해도 그 믿음은 뿌리가 깊으므로 흔들리지 않고 결국 사회의 올바른 성장을 이끌어 낼 것이다.

 
믿음으로 함께 하는 사회는 결국 모든 사안에 대하여 화합을 통해 이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