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청 미
<팽나무작은도서관 관장/ 전주서머나교회(기장) 담임목사>
2019년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에 찬 바람이 분다. 그 이유는 별로 이룬 것도 없고 손에 쥔 것도 없이 한 해가 다 흘렀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 아쉬움이 신에 죄송함으로 이어지고 심각한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러나 정말 2019년도에 우리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실패의 삶을 산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성과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성과가 있으면 성공한 것이고, 성과가 없으면 실패한 것이라는 도식은 정말 위험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국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함으로써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도록 사람들을 부추긴다. 그 결과 과정을 무시한 온갖 악이 자행된다.
성과지상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성서에서 나타난 모세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건져낸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그의 목적은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는 데 있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그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떠했는가? 모세는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지금 요르단에 있는 느보산 꼭대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실패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모세의 인생을 결코 실패로 규정짓지 않았다.
성서에서 보면 신명기 34장 10-12절에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고 했다.
또 히브리서 11장 24절 이하에서는 그가 “믿음으로 산 사람” 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한 모세의 인생이 실패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가 비록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광야에서 하루하루를 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광야에서 늘 신에게 믿는 마음으로 살았고 신과 동행하였고 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했다. 한 마디로 모세는 결과보다 과정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너무 자신을 자책하지 말자.
비록 1월 1일에 목표했던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지난 매일 매일을 성실하게 살았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성공한 것이다. 다가오는 2020년에도 성과지상주의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걸어가길 원한다.
이제 추억의 옛일이 되고 있는 2019년도의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지금 우리는 많은 사건과 사고 그리고 갈등과 분쟁 속에서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12월에 접해 있다. 지금도 정치권은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화평과 화합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인정하지 못하는 갈림길에서 다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는 어떠한가? 아니 가깝게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국제 정세로 보면 미국과의 갈등이 다시 격랑 속에 들어가는 것 같다. 2019년도에 실패한 지도자로 남아있을 것 같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바로 우리 앞에서 적나라하게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다툼과 분냄과 성냄보다는 평화와 안정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해 주는 그러한 사회현상을 보고 싶다.
2019년이 다툼과 분쟁의 해였다면 다가오는 2020년에는 좀 더 세심한 마음으로 서로에 대한 증오를 거두고 배려와 나눔으로 함께 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