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상
<이태리 페루지아 Orchestra Giovanile SR2 지휘자/ Coro S.Spirito Volumnia 지휘자>
이태리로 유학 나와 자리 잡고 산지 어언 21년, 젊은 시절 다 지나가고 이젠 50이란 숫자를 달고 다니는 나이가 되었다. 오랜 외국생활을 하다 보니 향수병에 제일 그리운 것은 내 형제들 그리고 고향친구들 그리고 한국음식이 제일 그립더라.
냉장고의 냉동실을 뒤져보니 청국장 한 덩어리를 발견, 언제 먹어봤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청국장 맘먹고 이태리에서 청국장을 끓여본다. 냄새가 얼마나 날지는 뒷전에 던져두고 또 시레기 말려두었던 마지막 한 봉지도 꺼내어 씻어서 모두 퐁당 배추 비슷한 채소도 듬뿍 넣고 마늘을 내 쪽 넣고 넣을게 없다보니 뭘 더 넣을까 생각하다 다시다도 좀 넣고 그리고서는 끓기만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끓는 동안 하얀 쌀밥을 안치고 동시에 냄비와 밥통에서 김이 올라온다.
비는 한 달 넘게 내리고 제법 공기가 차가워진 요즘 이렇게 따뜻한 국물이 그리운 계절이다. 밥과 청국장이 다 끓고 뜸들이고 냄새가 다 여물었을 무렵 청국장 맛을 보니 어머니가 끓여주시고 한국에서 먹던 그런 맛은 아니지만 그저 이름만이라도 청국장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위로가 된다. 기억 속에 있는 청국장의 모습은 연노랗게 올라오는 청국장인데 내 청국장은 거무스런게 시각적으론 빵점이다. 그래도 내 청국장이고 명찰이 청국장이니 본래는 이놈도 청국장 가문임에는 틀림이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청국장의 명작은 '냄새', 집안 가득 잠겨버린 청국장 냄새가 벌써부터 걱정되는 건 아내와 딸이 이 냄새를 처음 맡아본다는 사실이다. 점심밥으로 끓였으니 저녁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딸이 집안을 한두 걸음 들어서자마자 내게는 그리도 맛있는 청국장인데 배신자들 결국은 숟가락에 손도대지 않았다.
한 가족임에도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뭐 나는 꼬랑네 나는 치즈가 좋아서 먹었나? 주니깐 어쩔 수 없이 먹었지, 문화에 적응하고자 마누라가 주는 음식에 절대 토를 달지 않고 뭐든지 주는 대로 먹을게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기에.
젊을 때야 음식에 뭔가 부족하다 싱겁다. 요리는 이렇게 해라 했지만 나중에 다 부메랑으로 복수가 돌아오더라. 그래서 배웠다 아내가 주는 음식엔 무조건 칭찬과 맛있다는 만발하고 먹어줘야 불쌍한 남자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란 걸.
아무튼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난 그렇게 청국장 한 냄비 가득 끓여서 4일간 맛있게 먹었다. 당연히 그 4일 동안은 청국장 냄새로 내 아내와 딸에게 고문을 했다. 하루지난다음에 딸이 하는 말이 시간 지나니 적응할 만 하다고 한다. 이번엔 나의 승리!
아무리 좋은것이라 해도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이다. 나에겐 좋은 것이 남에겐 해가 될 수도 있는것, 인상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는 점 그러니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 문화적 차이는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그런 서로의 이해가 없으면 이 세상 살기 힘들다는 것.
청국장을 먹을 때 뭐 별거 넣은 것은 없지만 나에겐 고향에서 부모님과 형제들과 가난한 식탁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부딪치며 먹던 '청국장'이었다. 천국에 다녀온 듯한 만족감이 입안 가득했다. 아무리 냄새가 나도 자신이 좋아하면 냄새가 전혀 상관이 없듯이 애기엄마의 아기사랑처럼 말이다.
항상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가에 따라서 모든 사물은 부정이 되든가 긍정이 되든가 한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 역시 나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다시 먹어볼지 모르는 청국장 맛있게 먹었고 기억 속에 다시 저장해둔다. Addio 청국장이여 ritorna presto!!(청국장이여 안녕, 다음에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