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 로
<본지 논설위원/ 반태산작은도서관장>
우리는 시작을 위한 첫 번째를 일러 ‘ 늘 처음처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참 신선한 용어이면서 혹시라도 중간에 패착에 빠진다든지 아니면 매너리즘에 빠지면 이를 다시 생각해 보는 말로 시작할 때의 처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의 많은 변화 속에 시작은 되었는데 끝이 보이질 않는 경우가 참 많다. 출구전략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떤 사안이나 사회성에 이르러 끝이 보이질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치적인 대립과 갈등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무슨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언론이 편 갈라놓은 대로 맞추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이렇게 두 갈래로 꿰맞춰 놓은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하지만, 아무튼 이념에 따라서인지 몰라도 갈래를 선택하여 두 갈래의 길에서 끝이 보이질 않는 분쟁과 다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2019년 끝자락에서 계속되고 있다.
조금 높은 산에 올라갈 때 정상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정산은 얼마 정도 남았는데 물어보면 한결같이 ‘조금만 가면 된다’라고 하는데 그 조금만이 통상 1시간을 넘게 가는 거리이다.
곧 정상이 보일 듯하지만 끝이 보이질 않고 거리 생각 없이 계속 올라가면 결국 정상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렇게 정해진 사물의 길에서는 결국 끝이 보이지만 생각이나 사상 그리고 이념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끝이 정녕 보이질 않는가 보다.
끝을 보고 싶다. 그것도 유익한 끝을 보고 싶다. 누구나 공감하면서 우리 사회의 선한 이웃으로 더불어 할 수 있는 즐겁고 상쾌한 끝을 보고 싶다. 그래서 그 끝이 우리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며 또 다른 시작으로 전환하는 상생의 나래를 펴고 싶다.
안타깝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여론의 양분되어 있다. 한쪽이 수긍하면 다른 한쪽은 거의 맹목적으로 반대를 한다. 다른 쪽인 선점을 해서 그 사안이 옳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 자기방어막을 치고 자기 멋대로 여론형성을 주도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여론으로 생각과 의지가 다를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정략적이거나 당략적이거나 혹은 집단 이기주이거나 혹은 자신만을 위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 적인 성향이 강한 사회로 변모되면서 개인 이기주의가 심화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여론의 형성으로 교육과 훈련 그리고 계도를 통해 꾸준하게 공의 적인 사항을 여론으로 형성한다면 좀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자라나는 후세대들에 정말 분쟁과 다툼 그리고 이기심으로 가득한 한반도의 내일을 물려줄 것인가 일부 사회지도자들은 각성해야 한다. 분명 어느 한 곳에서는 봉사와 사랑의 정신으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것은 언론에 잠깐 보도될 정도의 소수에 불과한 내용이지 대부분은 TV나 신문 등에 거의 매일 분쟁과 다툼의 사안들이 보이니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치를 통해 국리민복을 위한다는 분들도 한번 뒤돌아 보라. 진정 얼마나 국민을 위해 일했는가를! 그리고 언론의 왜곡 때문인지 극단적인 생각의 극우와 극좌는 없었는지, 그러한 것들을 조장하지는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행태는 고대시대 때부터 아주 냉철하고 잔인하다. 조선 시대에 보면 봉건적 세습왕조이지만 다음 왕이 될 자기 아들인 세자가 의심스러워 자기 친아들을 죽이는 행태가 있는 등 권력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기에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의 끝은 바로 국민이다. 하지만 시작은 국민을 핑계 대면서 했지만, 그 끝에는 국민이 안중에 없다, 오직 자신만 있을 뿐이다.
특히 올해는 일부 정치, 특정 종교의 리더들이 많은 지탄을 받았다. 물론 소수의 사람이 그들을 옹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상식의 범주에서 어긋나는 것이기에 연말연시를 맞아 깨끗이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새로운 경자년의 한 해를 맞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