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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위선

최준호 칼럼
매년 연말이면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올 한 해동안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다양한 현상들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를 공모해 발표한다.

교수들이 선택한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였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처음 등장한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즉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언급은 논어 ‘자한편(子罕篇)’에도 나온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는 “잘못하거든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라는 뜻이다.

과이불개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데 예를 들면 연산군이 소인을 쓰는 것에 대해 신료들이 반대했지만 과실 고치기를 꺼려 고치지 않음을 비판했다.(연산군일기 3년 6월 27일)

교수신문을 살펴보니 전국의 대학교수 935명이 설문에 응했다. 과이불개는 476표(50.9%)를 얻어 압도적이었다. 

‘욕개미창(慾蓋彌彰)’은 137표(14.7%)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욕개미창은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말이다. 과이불개는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가 추천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여당이나 야당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않는다”라며 “그런 가운데 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다”고 추천 이유를 말했다. 

과이불개를 선택한 교수들의 선정 이유는 각양각색이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잘못(60대·공학)”과 같은 답변이 많았다. 특히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소인배의 정치를 비판한 “현재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민생은 없고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미래 발전보다 정쟁만 앞세운다(40대·사회)”나 “여당이 야당되었을 때 야당이 여당 되었을 때 똑같다(60대·예체능)”라는 등의 의견이 많았다. 

아울러 “자성과 갱신이 현명한 사람의 길인 반면, 자기 정당화로 과오를 덮으려 하는 것이 소인배의 길(50대·인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때문에 “잘못하고 뉘위침과 개선이 없는 현실에 비통함마저 느껴진다(50대·의약학)”라고 개탄한 교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과이불개를 선택한 교수들 중 “입법, 행정 관계없이 리더의 본질은 잘못을 고치고 다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솔선수범하는 자세, 마음을 비우는 자세에 있다(60대·사회)”고 지적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요 일 점, 일 획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사회에서 대학교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가. 어떤 집단보다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지식인이요, 지성들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의, 합리와 불합리, 진실과 거짓 등 사회가 극한 대립을 벌이고 충돌하며 소모적 논쟁이 벌어질 때 누구보다 먼저 세상에 목소리를 내서 갈등과 논쟁을 잠재워야 할 책무가 교수에게 있지 않는가. 하지만 지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멀리 갈 것 없이 올 한해만 돌아보자. 서울 이태원에서 1백60여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국가의 잘못으로 압사를 당했는데도, 국민들과 유가족의 슬픔을 억압하여 공분을 사고 있는데도 지식인 집단은 오불관언이다. 

대통령 부인의 논문표절과 주가조작에도 침묵을 지킨다. 외교의 방향이 특정 국가로 편향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되면서 국산 전기차 등 수출이 크게 줄어도, 김진태 강원지사 발 경제위기가 현실로 닥쳐도, 국민 다수가 알아듣는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우겨도, MBC와 교통방송 등 소위 진보언론을 대놓고 차별해도, 각종 개혁 정책들이 과거로 돌아가도, 대통령과 정부가 대놓고 국민들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아도 지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교수집단이 연말이 되니 우아하게 사자성어나 발표하는 이런 행동을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제발 이짓 좀 그만하자. 사회가 이렇게 악이 창궐하고 썩어가는데도 침묵하면서, 깨어있는 지식인으로서 올곧은 목소리를 내기는 커녕 한가롭게 말타령이나 하다니 위선의 극치를 본다. 

제자 나이 또래의 160여명 젊은이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있는데도 성명서 하나 내지 않은 집단이 이 무슨 부끄러운 짓인가? 그까짓 사자성어 한마디 표현으로 뭘 하겠다는 건가? 당장 이 부끄러운 짓을 멈추야 하지 않겠는가. 4·19 의거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것은 의로운 학생들의 시위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것은 고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 집단의 시국 선언문과 함께 학생 편에 서서 불의한 권력에 맞선 현실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악과 불의에 눈 감가다 때만 되면 나타나 어구 하나 발표하고 입 닫는 비겁한 행동으로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위선에 찌든 지식인 집단의 맹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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