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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엄윤상 <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20년 만에 두 아들을 만났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구조되지 않았다면 아들들을 보지 못한 채 죽었을 것이다. 두 아들은 생각보다 훨씬 잘 자라 있었다. 큰 아들은 한 가정의 건실한 가장이 되었고, 작은 아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어여쁜 처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제 죽음을 앞두고서야 아들들을 마주하게 되니 아비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려서 천애고아가 되어 배움이 전혀 없는 삶이다.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지금까지 60년을 살았다.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함께 산 사람은 두 아들을 낳아 놓고 집을 나갔다.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배움이 있는 것도, 물려받은 땅이 있는 것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 동네 허드렛일 도와주며 식량을 얻어 두 아들을 먹였으나, 항상 굶주림에 울었다. 몇 해를 술로 보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지 형수가 취직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농장인데, 먹여주고 재워주며 월급도 준단다. 자포자기 삶에 대한 도피의 심정이었다. 아이들을 동생에게 맡기고 농장에 들어갔다.





축사 옆 1평짜리 창고가 숙소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은 혼미해졌고 주인이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일하라면 일하고, 자라면 잤다. 찬밥에 물을 말아서 허연 김치를 반찬삼아 끼니를 때웠다. 시간이 갈수록 고된 일들이 주어졌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밭을 갈고 풀을 뽑고 여물을 주었다. 일이 좀 서툴다 싶으면 농장 주인부부의 험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매질도 당연지사였다.





정신은 이미 황폐해졌고 육체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에 의지했다. 며칠에 한 번씩 쥐어주는 만 원, 이만 원으로 술을 샀다. 이제 술이 없으면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농장 주인부부는 오늘도 ‘이 놈이 술만 먹고 일은 안 한다’며 구박한다.





어느 날, 농장주인과 함께 면사무소에 갔다. 행색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면사무소 직원이 뭐라고 묻는다.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농장 주인이 대신 대답한다. 종이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 한글을 몰라 농장주인이 내 손을 잡고 대신 써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기초연금과 복지급여를 신청했단다. 그 후 국가로부터 받은 돈은 모두 농장주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목이 많이 아프고 씹을 이빨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밥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농장 주인은 병원 한 번 보내주지 않았다. 경찰에 구조되고 병원에 있으면서 진찰을 받았는데, 식도암 말기라고 한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한다. 6개월 정도 남았다나.....





농장주인은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농장주인이 찾아왔다. 100만 원을 줄 테니 서류에 지장을 찍으란다. 농장 주인을 보자 두려운 마음뿐이었다. 농장 주인이 엄지에 인주를 묻히더니 강제로 서류에 찍는다. 그리고 100만 원을 건네준다. 이 서류는 합의서였고, 이로 인해 농장 주인은 구속을 면했다. 농장 주인은 지역의 유지였다. 도의원도 지냈다. 여기저기에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왜 나를 노예처럼 대했을까.





몇 달 전에 나는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6개월은 행복했다. 요양병원에서 안락한 잠을 잘 수 있었고 동생과 자식들의 보살핌도 분에 넘치게 받았다. 농장주인이 법의 심판대에 섰고, 아들들이 나서서 손해배상도 청구했다고 한다. 부끄러운 아비가 자식들에게 남겨줄 것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저승 가는 길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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