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오늘 철종이 승하한 것은 조선왕조가 숨진 것이기도 하다. 그 뒤로 왕은 둘이나 나오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실록에 오르지 못한 시대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론도 옳다.
사람의 사망 시점을 두고도 말이 엇갈릴 수가 있다. 심장이 멎어야 죽은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지만 뇌기능이 정지된 것으로 죽었다고도 한다. 철종을 뒤이은 고종이나 순종이 외세에 의해 물러난 것은 조선왕조가 식물왕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에 비해 '강화도령' 출신의 철종은 왕조실록에도 턱걸이 했으니 운이 좋아 보이나 그것은 겉보기다. 왕관은 썼으나 그는 강화도령 신세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일가는 외척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바람에 강화도로 유배가고 그는 강화도령이 됐으나 그곳에서 농사나 짓던 그를 왕으로 만든 것도 안동 김씨였다. 물론 김씨들이 더 유력한 후보를 젖혀두고 그에게 왕관을 씌우게 된 덕목은 그가 농사일밖에 모른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왕이 된 그가 김씨네 여자를 왕비로 맞고 이 왕가의 사람이라기보다 김씨네 사위로서 드르의 세도정치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닌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철종의 바탕이 우매한 암군이어서는 아니었다. 그는 인자하고 검소했으며 영민한 자질도 있었다. 그가 비단보다 무명을 좋아했고 굶주린 백성들을 보살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내가 고기를 많이 먹으면 백성이 본받아 가축이 많이 손상된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강화도령의 체험을 잘 승화시킨 셈이다.
하지만 철종은 그런 경륜을 펼 겨를은 물론 후사도 없이 떠났고 왕위는 또 한번 강화도령처럼 퇴락한 왕실 가문의 고종으로 이어진다.